긴장을 풀고 이완해야 자연치유력이 살아난다

등록 :2020-08-04 19:25수정 :2020-08-05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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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벤슨 교수가 <이완반응>에서 밝힌 명상의 과학

코로나19 사태로 집 근처 주민센터의 헬스장도 닫히고 요가·에어로빅 같은 수업도 장기간 열리지 않는다. 심리적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여도 이를 해소할 장소가 사라진 셈이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쌓이면 면역력이 저하돼 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제 의학적·과학적 사실이다. 신체와 정신은 분리돼 있다는 수학자 데카르트의 가정을 철저히 따랐던 기존 의학계의 관념도 지난 20~30년 사이 급변했다. 이단시했던 심신요법을 미국 의사 3분의 2가 권유하고 있다니 말이다. 심리적 변화가 몸 건강에 실제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연구 결과가 가져온 변화다.

하버드대 벤슨 교수는 우리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을 살리려면 명상과 기도를 통해 이완반응을 촉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 클립아트코리아
하버드대 벤슨 교수는 우리 안에 있는 자연치유력을 살리려면 명상과 기도를 통해 이완반응을 촉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림 클립아트코리아

스트레스와 감정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주류 의학계의 철옹성이라는 하버드 의대에서 심신요법의 효과를 규명해온 선구자 중 한 명이 허버트 벤슨 교수다. 그의 명저 <이완반응>(페이퍼로드 펴냄·양병찬 옮김)이 ‘명상은 어떻게 과학적인가’란 부제를 달고 한글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 제목이 말해주듯 그 비법은 ‘이완’이다. 즉 긴장을 풀고 멈추는 것이 몸과 마음 건강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를 가져다주는 기법이 바로 명상이다. 즉 몸의 긴장을 풀어주면 몸의 자가치유력이 회복돼 스스로 병을 이겨내고 치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말기 암에 걸린 사람에게 ‘명상만 하라’거나 ‘낫는다고 암시만 하면 모든 게 호전된다’고 믿으며 외과적 치료를 멀리하라고 말하는 부류는 절대 아니다. 식탁 모서리에 부딪혀 부러진 갈비뼈가 한쪽 폐를 관통해 호흡곤란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가 응급처치로 목숨을 건진 그이기에 비상시 현대 의학의 즉각적인 개입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의 관심은 그간 주류 의학계가 간과했던 스트레스 관리와 이완 등 자가치유(셀프케어)법이다. 서구에서 이 연구의 선봉은 스위스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발터 루돌프 헤스(1881~1973)였다. 그는 ‘투쟁-도피 반응’ 연구에서 고양이가 놀랐을 때 몸이 활처럼 휘고 털이 곤두서거나, 화난 개가 동공을 확장한 채 으르렁거릴 때 혈압, 심박수, 호흡률, 근육의 혈류량, 대사율을 증가시켜 투쟁이나 도피에 대비한다고 봤다. 인간도 변화와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하버드 의대의 저명한 생리학자 월터 브래드퍼드 캐넌(1871~1945) 박사는 ‘투쟁-도피 반응이 빈번히 활성화될수록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반대로 동일한 신경계를 잠재우는 이완반응을 촉발하면 고혈압과 같은 질병을 예방·치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연구가 서구 학계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라마는 1987년부터 서구의 대니얼 골먼, 존 카밧진 등 생물·인지과학·신경과학·심리학자들과 대화해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고찰했고, 이 내용은 <마음이란 무엇인가>(씨앗을 뿌리는 사람 펴냄, 김선희 옮김)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이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에 비해 조기 사망률이 1.5배나 높고, 심장발작 확률도 2~3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이 대화에서 공표됐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벤슨 교수는 각자 가진 신앙이 이완반응을 가져오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사진 픽사베이
벤슨 교수는 각자 가진 신앙이 이완반응을 가져오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사진 픽사베이

이완이 내 안의 자가치유발전소를 가동한다

벤슨 박사는 인도 요가의 일파인 초월명상(TM) 수행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명상만으로 놀랄 만한 생리 변화―심박수, 대사율, 호흡률 저하―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또 국제갤럽조사연구소와 손잡고 수백명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봉자와 대조군의 데이터를 수집해 비교·분석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약물복용과 의료적 치료를 잘 하지 않는 대표적인 미국 신흥종교다. 그 결과 크리스천 사이언스 신도는 일반인보다 훨씬 자주 영적 수련을 하고, 질병에 걸리는 빈도가 낮으며,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를 통해 벤슨 박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환자들이 기존 의학에 지나치게 강력한 권력을 부여해 몸 밖에서만 해결책을 찾으려 몸부림치지 말고, 자신이 이미 셀프케어를 통해 건강을 제어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

 

 

벤슨 박사의 연구는 1995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이완반응과 행태론적 접근방법’을 평가하기 위한 기술평가위원회 소집으로 이어졌다. 이 위원회는 ‘모든 만성 통증 치료법에 이완반응을 통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벤슨 박사는 특별한 명상 수행만이 이완반응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가톨릭 신자에게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개신교 신자에게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무신론자에겐 “사랑, 평화, 평안” 같은 단어만 반복하게 했는데도 이완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다.

 

그는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환자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게 된 것이어서 난감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지만, 신앙이 치유 과정에 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라고 말한다. 그는 “셀프케어를 이용할 경우, 스트레스나 심신의 부적절한 상호작용으로 초래되는 모든 장애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며 “우리의 몸속에 내장된 ‘공짜 치유 자원’을 활용한다면 미국에서 매년 낭비되는 의료비를 최소한 500억달러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완을 위해 서구인들이 응용하는 자율 훈련 기법들은 대부분 요가나 위파사나와 선, 티베트 불교 명상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자기 전에 몸을 이완해 숙면에 도움을 주는 최고의 이완수련으로는 ‘요가 니드라’(수면요가)를 꼽을 수 있다. 요가 니드라는 유튜브 등을 보고 따라 하면 된다.

 

또 가장 손쉬운 이완명상으로는 수식관이 있다. 수식관은 50부터 혹은 30부터 역순으로 수를 세는 것이다. 인위적인 호흡이 아닌 자연스러운 호흡에 따라 내쉴 때마다 숫자를 하나씩 줄여가면서 손끝과 발끝으로 몸의 나쁜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쉬운 이완만으로도 몸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해소돼 자연치유력을 고양할 수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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