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차량 공유, 손정의 손안에 있소이다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 입력 2018.03.31 03:07

    [오늘의 세상]
    '우버 최대주주 등극' 등 막대한 투자… 대륙별 1위 업체들 장악

    업체간 M&A로 막후서 사업재편
    중국 디디추싱·동남아 그랩… 각 지역 차량 공유 독점체제 구축
    출혈경쟁 없애고, 수익 끌어올려… 자율주행차 시장 선점 노림수도

    세계 차량 공유 시장을 장악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이 시장 재편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미국 우버에 92억5000만달러(약 10조원)를 투자해 최대 주주로 올라선 것을 비롯해 중국 1위 디디추싱, 동남아시아 1위 그랩, 인도 1위 올라캡스 등에 총 356억6000만달러(약 37조9000억원)를 투자했다. 손 회장은 자신이 주도해 애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과 함께 만든 비전 펀드도 투자에 활용했다.

    이를 통해 각 기업에서 최대 주주 또는 2대 주주 자리를 장악한 손 회장은 각 업체 간 사업 매각과 인수를 막후에서 주도하며 지역별 독과점 체제 구축에 나섰다. 미국의 경제 매체 쿼츠는 "세계 차량 공유 시장의 진정한 왕(real king)은 우버가 아니라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라고 보도했다.

    차량 공유 시장 구조조정 나선 손정의

    우버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동남아시아 지역 사업을 그랩에 매각하고 그랩 지분 27.5%를 확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버는 동남아에서 그랩과 경쟁했지만 손 회장이 최대 주주가 된지 두 달 만에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미국 CNBC방송은 "이번 거래를 주도한 것은 양쪽에 모두 투자한 소프트뱅크"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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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우버, 중국 디디추싱, 동남아시아 그랩 등 주요 차량 공유 업체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 /블룸버그
    우버는 인도에서도 사업을 접고 현지 1위인 올라캡스에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차량 공유 시장이지만,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는 우버를 철수시키고 올라캡스에 사업을 몰아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1월 중국 디디추싱이 브라질 1위인 99를 10억달러(약 1조원)에 인수한 것 역시 손 회장이 이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중국에서도 우버가 디디추싱에 사업을 넘겼다.

    손 회장은 이런 사업 재편을 통해 시장별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 시장은 우버가 장악했고, 중국은 디디추싱, 동남아는 그랩이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올라캡스가 우버의 인도 사업을 인수하면 인도 시장 역시 독점 체제로 바뀐다.

    자율주행차 시장 독점 꿈꾸는 손정의

    손 회장이 큰 그림의 사업 재편에 나선 것은 자신이 지분을 갖고 있는 차량 공유 업체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을 없애 단기간에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손 회장은 지난해 8월 "앞으로 30년, 50년 뒤에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는 방식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며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할 경우 차량 공유 서비스는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 회장이 주도하는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는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경우 차량 공유 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가의 자율주행차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보다는 자금 동원력과 함께 고객 수억 명을 확보하고 있는 차량 공유 업체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자율주행차가 본격화되면 차량 공유 시장은 연간 1000억달러(약 106조원) 규모가 넘는 세계 택시 시장까지 모두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손
    회장의 공격적 투자 방식도 화제다. 시장에서 1위를 할 만한 스타트업을 꼽아서 깜짝 놀랄만한 금액을 투자하되 빠르게 사업을 키우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손 회장을 잘 아는 국내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손 회장은 한번 마음이 꽂히면 스타트업이 원하는 금액의 10배 이상을 쥐여주고, 상대방이 주저하면 경쟁자에게 투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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