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불청객' 제주 제2공항…난개발과 개발 사이

제주|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강원보 신산리 이장(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공동대표)이 11월 20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독자봉 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제주 제2공항 예정지를 설명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강원보 신산리 이장(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공동대표)이 11월 20일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독자봉 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제주 제2공항 예정지를 설명하고 있다. / 주영재 기자

“발전 다 됐수다. 발전 필요 없수다. 집도 다 번듯하고 살기 좋고, 농사지어 편하게 잘 사는데.” 지난 11월 19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복지회관에서 만난 양승열씨(80)는 제주 제2공항 건설로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다소 격하게 물리쳤다. 제주에서도 청정마을로 손꼽히는 조용한 동네가 공항 건설로 큰 소음피해를 입게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초 수산리를 비롯해 인근 온평리와 난산리, 신산리가 제주 제2공항 부지로 선정됐다고 발표되자 처음 동네 여론은 우왕좌왕했다. 투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주민들과의 상의 과정 없이 전격 발표됐기 때문이다. 

“찬반 주민 여론 반대로 기울어” 

마을 주민 중에서도 막연히 공항이 생기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 제2공항 건설로 마을이 처할 미래가, 나아가 제주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보이자 부지에 속한 마을의 여론은 점차 반대로 굳어졌다. 

수산리의 경우 마을의 중심에 수산초등학교가 있다. 조선시대 때 대표적 방어유적인 3성 9진 중 하나인 수산진성을 학교 담장 삼아 1964년 개교한 학교다. 학교는 공항 예정부지에서 직선 800m 거리에 있다. 비행기 소음이 큰 이륙 방향이다. 오창현 수산리 청년회장(43)은 “이명박 정부 시절 30억원 지원금을 무기로 초등학교를 통·폐합하려 했을 때 외지 사람들을 유치해 초등학교를 겨우 살려냈는데 이젠 소음 때문에 정말 사라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공항이 건설될 경우 안전을 위해 수산리의 대표적 오름이자 상징인 대수산봉 약 47m를 깎아내야 한다는 말도 돈다. 비행기와 조류의 충돌을 막기 위해 공항 부지 3㎞ 이내에는 새를 유인할 수 있는 과수원이나 양돈장도 세울 수 없다. 공항이 생기면 귤농사에 기대 살던 이들이 생업을 접어야 한다. 약 3000평 부지에 귤이며, 천혜향, 한라봉 농사를 짓는 오창현씨 역시 과수원을 못 하게 된다. 땅을 팔고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수산리는 이름만 남게 된다. 1000년도 넘는 마을 역사가 끊기게 된다.

신산리 강원보 이장(55)이 기억하는 발표 당일 풍경은 원희룡 지사가 마치 개선장군처럼 읍사무소에 도착한 것으로 남아 있다. 강원보 이장은 “도지사가 이장들을 만나면서 숙원 사업을 가져왔으니 이쪽 동네는 대박났다. 복합도시·에어시티 지으면 지역이 발전하고 주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지역 유지들은 단군 이래 성산의 최고 대박 사건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평당 30만~40만원하던 땅값이 부지 발표 후 한때 1000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개발 이익이 눈에 잡힐 듯하자 성산읍 마을들의 분위기는 확연히 갈렸다. 공항청사가 세워지고 상업시설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성산리 등 성산읍 다수 지역은 찬성이 우세하다. 토지를 수용당하거나 소음피해를 입게 되는 지역은 반대가 우세하다. 제주 전체적으로는 최근 반대 여론이 더 우세한 것으로 나오고 있다. 주민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진행된 절차상 문제점 외에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을 위한 사전 타당성 용역이나 제2공항 건설사업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갖가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주 제2공항 자체의 정당성에 의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에서 직선거리로 1km가 채 되지 않은 곳에 있는 수산초등학교와 가수 요조와 이종수씨가 공동 운영하는 ‘책방무사’의 실내 모습. / 주영재 기자

제주 제2공항 예정지에서 직선거리로 1km가 채 되지 않은 곳에 있는 수산초등학교와 가수 요조와 이종수씨가 공동 운영하는 ‘책방무사’의 실내 모습. / 주영재 기자

공론화로 갈등 해소 시급 

여론조사 문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한 공론화에는 찬성 8대 반대 2 정도, 단순하게 공항 찬성 반대로 나눌 경우 5 대 5, 기존의 제주공항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포함할 경우 기존 제주공항 활용이 더 우세한 형국이다. JIBS제주방송이 지난 5월 30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제2공항 건설보다 기존 공항을 활용하는 방안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에 69.1%가 공감을 표했다. 또한 공론조사 필요성에는 84.1%가 동의했고, 제2공항 갈등의 원인으로 국토부 등 정부의 일방 추진을 드는 비율은 33.3%로 가장 높았다. 

국토부의 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보고서가 지난 5월 거의 4년 만에 뒤늦게 공개된 것이 여론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현 제주공항 개선을 통해 제주도의 장기 항공 수요인 연간 4560만 명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는데 국토부가 그 존재를 은

폐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강원보 이장은 “우리 쪽으로 여론이 기운 가장 큰 이유는 현 공항 확장으로 충분히 장기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ADPi 보고서를 국토부가 숨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음 신산리·수산리·난산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성산읍 주민대책위는 이제 도내 121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로 확대됐다. 이들은 국토부가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를 하면 공항 건설사업이 법적으로 확정되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이를 막는 데 일단 주력하고 있다. 

기본계획 고시를 하려면 환경부와 협의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면 성산 지역에 공항을 지을 수 없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고 영향평가가 내실있게 진행되도록 감시하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기본계획 고시 전 도지사는 도민 의견을 수렴해 국토부와 협의하도록 되어 있어 도지사가 공론화 절차를 거쳐 도민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압박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제주공항 확충으로 이미 연간 3200만 명의 수용능력을 확보해 혼잡도를 상당히 줄였고, 국제선 터미널 신설과 관세시스템 개선으로 장기 수용 능력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50만 평 부지에 2000만 명을 수용하는 새 공항을 짓는 건 국토부가 예측한 수요에 비춰도 전혀 적정하지 않고 과도하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 분위기가 좋아 이곳으로 이주한 육지 사람들도 공항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수산초등학교 인근에서 가수 요조와 함께 2년째 ‘책방무사’를 운영하는 이종수 대표(36)는 “서울 종로구 계동에서 책방을 하다 월세가 올라가고 과도하게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동네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둘의 생각이 맞아서 이곳에 내려왔다”며 “마을에 피해가 있다고 하니 저희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15년간 비어 있던 ‘한아름상회’라는 가게의 내부 공간만 수리해 사용하고 있다. 이 대표는 “원래의 모습과 분위기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어르신들이 오셔서 여기서 막걸리를 사갔던 이야기,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며 “기존에 있던 것을 지키자는 맥락에서 제2공항 문제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산읍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외지인 상인들이 많은 곳이다. 성산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40대 남성 ㄱ씨는 “땅이 없는 이주민들은 솔직히 반대 쪽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산읍 안에서는 찬반 여론전이 격렬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서로의 주장을 내건 플래카드도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부에선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ㄱ씨는 “집집마다 다 절반씩 갈린다. 같은 집안끼리도 싸운다. 어디서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땅 있는 사람은 땅값이 오르길 바라고, 땅이 없는 사람은 임대료가 올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ㄱ씨는 지역사회가 갈등으로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어느 방향이든 빨리 결정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원보 이장은 “도 전체 여론을 보면 반대가 많지만 성산읍 14개 마을 중 10개 마을은 찬성하고 있다”며 “600년을 같이 살아온 공동체가 눈앞의 조그만 이익 때문에 이웃이 쫓겨나가는 걸 방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해안도로에 한 펜션 건물이 창문이 깨진 채 방치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의 해안도로에 한 펜션 건물이 창문이 깨진 채 방치되어 있다. / 주영재 기자

난개발로 제주만의 매력 잃어 

제주도의 여론이 바뀐 데는 난개발로 인한 피해가 체감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의 환경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쓰레기, 오·폐수, 지하수 오염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제주 봉개동 주민들이 음식물 쓰레기 매립장 입구를 봉쇄하면서 빚어진 갈등은 대표적인 사례다. 

난개발로 지하수가 지나가는 통로인 화산 지형 ‘숨골’이 훼손되면서 제주도에 없던 홍수 피해가 생기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오창현 수산리 청년회장은 “육지에선 시간당 300~400㎜ 비가 내리면 난리 나지만 여기선 숨골로 빠지기 때문에 큰 피해가 없었다”며 “하지만 중산간에 대규모 관광단지들이 많이 생기면서 숨골이 막혀 갈 데 없어진 물이 인근 오조리로 차오르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좌읍에서 살며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식자재를 판매하는 요리사 최루시아씨(38)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세 차례 태풍으로 당근이 물에 쓸려가 흉작을 봤다며 최근 미묘한 환경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유입으로 소득이 느는 것보다 오히려 생활비가 올라가고, 관광객들이 중산간 등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관광단지로 몰리면서 오히려 시내의 중소 상인들은 손님을 잃고 있다. 강원보 이장은 “경제활성화 논리로 대규모 개발을 허용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주민들은 대개 잔디의 김을 매거나 주차관리를 하거나 청소하는 하청업에 종사할 뿐”이라며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정작 제주도민은 자연을 내주고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관광객 증가를 노리고 우후죽순 세워진 숙박시설들은 손님을 구하지 못해 비어 있는 곳이 많다. 지난 11월 20일 들렀던 성산읍 오조리와 하도리, 종달리 일대에서도 겉은 멀쩡하지만 유리창이 깨지고 안이 어지럽게 훼손된 펜션들이 종종 보였다. 신산리 주민 김광종씨(55)는 “최근 1~2년 사이 대기업이 세운 숙박시설이 늘면서 공실이 1만 실도 넘는 걸로 안다”며 “호텔에서 3만~4만원에 덤핑을 하니 게스트하우스며 펜션이 버티질 못한다”고 말했다. 중소 숙박업 종사자들이 제2공항을 반기는 이유도 관광객 증가로 손님들이 늘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데 김씨는 이렇게 느는 손님도 대부분은 호텔과 리조트 등으로 흡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대기업이 대규모로 숙박시설을 짓는 걸 도에서 막지 않는 한 지금까지의 상황이 되풀이될 뿐이다”며 “1년에 1500만~1600만 명씩 관광객이 오는데도 적다고 하지 말고 큰 기업에만 관광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도가 자연을 훼손해 개발을 해도 육지에서 관광객이 와줄 거라는 환상 같은 믿음을 빨리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찬성하는 쪽에서는 제주도가 여전히 개발이 필요하며, 경기활성화를 위해선 관광객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성산읍 고성리 주민 정숙자씨(57)는 “제주공항이 굉장히 복잡하고 제주시까지 가는 교통량이 많아 혼잡하다”며 “조류와 환경보호를 주장하지만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공항건설은 지역균형 발전 기회” 

고성리 농협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고창일씨(59)는 균형발전론을 주장했다. 이는 제주도가 도민을 설득하는 주요 논리이기도 하다. 그는 “제주도 인구가 70만 명인데 대부분의 인구와 시설이 제주시에 다 쏠려 있다”며 “공항을 건설하면 낙후된 성산과 구좌, 표선을 개발하고 인구가 늘어 큰 병원도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늘면 식자재 공급을 위해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로 제주가 제주만의 매력을 잃고 있다는 주장을 육지 사람의 환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제주도답지 않다’라는 말에 제주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는 육지 사람의 고정관념이 반영됐다는 뜻이다. 월정리에서 택시업을 하는 정성환씨(52)는 “서울이나 부산 사람에게 조선시대 그대로 살게 하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노골적으로 말해 그럼 제주 사람은 초가집에서 돼지 키우고 살면 좋겠나”라고 되물었다. 정씨는 “외지인들이 너무 제주도다운 게 사라졌다고 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제주 제2공항을 둘러싼 갈등은 ‘개발’을 어떻게 바라볼지의 문제로 압축된다. 개발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한다는 믿음과 이제 개발보다는 지속가능한 삶을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의 차이다. 결국 갈등을 해소하려면 시간을 두고 양측이 서로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제주 제2공항을 둘러싼 여론이 아직 찬반이 팽팽히 맞선 것과 달리 공론화에는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이유이다. 오창현 회장은 “제주 제2공항은 제주의 운명을 결정할 문제인데 너무 안일하고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며 “1~2년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잘잘못을 따지면서 천천히 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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