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天符經)

전문은 총 81자이다. 일반적인 해석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묘향산 석벽본, 태백일사본 농은 유집본
원문 한글 음 원문 한글 음
一始無始一
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三
一積十鉅無匱
天二三地二三人二三
合六生七八九
三四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池一
一終無終一
일시무시일
삼극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일적십거 무궤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합육생칠팔구
삼사성환오칠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一始無始一
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三
一積十鉅無匱
天二三地二三人二三
合六生七八九
三四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本心本太陽昻明
人中天池一
一終無終一
일시무시일
삼극무진본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일적십거 무궤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합육생칠팔구
삼사성환오칠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앙명
인중천지일
일종무종일
주) 판본 사이에서 다른 부분은 굵은 글씨체로 표시
 

천부경

 

♣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이니


♣ 析三極無盡本(석삼극 무진본) ♣

하늘과 땅과 사람으로 나 뉘어도 근본은 변함이 없고


♣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

하늘 땅 사람은 모습은 다르되 근본은 같으니라


♣ 一積十鉅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

하늘의 정기가 충만해지건만 담을 상자 없어 사람으로 변하노라


♣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

삼극이 돌고돌아 24절기를 만들고


♣ 運三四成環五七(운삼사성 환오칠) ♣

삼극의 조화로 기가 몸과 마음을 감싸노니


♣ 一妙衍萬往萬來(일묘연 만왕만래) ♣

하늘의 움직임은 묘하도다 삼라만상이 가고 오는구나


♣ 用變不動本(용변 부동본)♣

만물의 쓰임은 변해도 근본은 변치않고


♣ 本心本太陽(본심 본태양)♣

근본마음이 본래 밝은 빛이니


♣ 昻明人 中天地一(앙명인 중천지일)♣

사람을 우러러 비추어라. 천지간에 으뜸이니라.


♣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나는 우주이니라."

 

 

 

천부경(天符經, Chonbukyong)은 한민족(韓民族, 朝鮮族) 최고(最古)의 나라인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神誌) 혁덕(赫德) (1)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의 글자로 기록하게 하였다. 이것이 바위에 전각(篆刻)된 것을 신라(新羅, Shilla, B.C. 57~A.D. 935)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보고 다시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해졌다. (2) 그후 조선시대(朝鮮時代) 중종(中宗)무렵 이맥(李陌)이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삽입(揷入)하여 그 명맥(命脈)을 잇게 되었다. 일십당주인(一十堂主人) 이맥(李陌)은 그의 직간(直諫)이 연산군(燕山君)의 노여움을 사게되어 갑자년(甲子年)에 충북(忠北) 괴산(槐山)으로 유배(流配)되어 귀양(歸養)살이를 한 사람이다. 16년 뒤 중종(中宗) 15년 (A.D. 1520) 이맥이 찬수관(撰修官)이 되면서 내각(內閣)에 소장(所藏)되어있는 여러 비밀서적(秘密書籍)들을 접하게 되었고, 귀양시절 채록(採錄)한 것을 합하여 삼일신고(三一神誥) 등 비전(秘傳)되는 기록과 함께 태백일사를 편집(編輯)하였으나,(3) 유가(儒家)와 불가(佛家)의 사대주의(事大主義) 위세(威勢)에 눌려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왔다. 천부경(天符經)은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에 포함(包含)되어 있는 것으로, 1898년 계연수(桂延壽)가 단군세기(檀君世紀)와 태백일사(太白逸史)를 합쳐서 환단고기(桓檀古記)를 편찬(編纂)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4)

神誌篆字 모두하여 81자인 천부경(天符經)은 비록 간단한 문장(文章)이지만 수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다양하게 평가되며 그 해석조차 읽는 방법에서부터 적용 범위까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다. 천부(天符)는 여러 기록에서 환웅(桓雄) 시대부터 세상을 다스릴 때 사용한 것으로, '천부인(天符印)', '천경(天經)', '천부(天符)를 새긴 거울(鏡)' 등으로 나오는데, 주로 경전(經典)으로서 신고(神誥)와 함께 민중에게 설명하여 깨닫게끔 하고 있다.(5) 구환(九桓)을 통일한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지도자(指導者, 國人)들을 불러 약속하기를, "앞으로는 백성의 뜻을 물어 공법(公法)을 만들고 이를 천부(天符)라 할지니, 그 천부(天符)란 만세(萬世)의 강전(綱典)이며 지극히 존중(尊重)하여 아무도 이를 어길 수 없는 것이다." (6) 라고 하였다. 그리고 천부경과 함께 강연(講演)하였던 신고(神誥)는 삼일신고(三一神誥, Samilshinko)라 하는 것으로서 "천신조화(天神造化)의 근원(根源)과 세상사람들과 사물들의 변화(變化)에 대하여 상세히 쓴 것으로서, 옛책에는 구분되지 않던 것을 행촌(杏村) 선생이 처음으로 5장(章)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7)라고 이맥(李陌)은 설명하였다. 즉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천부경(天符經)을 보충하여 기술(記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천부경은 말하자면 법전(法典) 이상의 천상(天上)의 진리(眞理)로서 만물(萬物)의 생성(生成)과 변화(變化)에 대한 원리(原理)를 쉽고 간단하게 요약(要約)한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전해지는 천부경(天符經)은 가로, 세로 각각 9자(字)씩 모눈(方眼)으로 한자(漢字)가 정렬(整列)되어 전체적인 모양이 정사각형(正四角形)을 이룬다. 전해지는 기록에서는 이 천부경이 처음에 녹도문(鹿圖文, 鹿書)으로 기록되었고, 토판(土版)에 전문(篆文)을 새겨 패용(佩用)하였으나, (8) 아직 녹도문(鹿圖文)이 어떠한 모양의 글씨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평안북도(平安北道) 영변군(寧邊郡) 묘향산(妙香山)에서는 위와 같은 신지전각(神誌篆刻)이 발견되어, 이것이 천부경이라는 주장(主張)이 제기되고 있으며, 계연수가 확인한 전문(篆文) 각자(刻字)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기록 상으로는 여러가지 고대(古代) 문자(文字)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밝혀져서 인정된 문자(文字)의 역사(歷史)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문명(文明)의 남부 지역인 수메르(Sumer)에서 시작되었다. B.C. 3500~3000년 경에는 중국에서도 그림문자가 발생되었으며, B.C. 2900년 경 수메르의 우루크(Urg)에서는 그림문자가 쐐기모양의 설형문자(楔形文字)로 바뀌었다. 중국에서는 B.C. 1500년 경에 기호(記號)로 되었다가, B.C. 200~ A.D. 200년 사이에 체제가 완비(完備)되어 오늘날까지 거의 변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쓰이고 있어,(9) 한자(漢字)가 제대로 사용된 것은 대략 진(秦, Chhin, B.C. 221~B.C. 207)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질서있는 짜임새에서는 처음부터 한자(漢字)에 준하는 문자(文字)로 기재하였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글자 하나 하나에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반복되거나 연속된 문자들이 운률(韻律)과 함께 의미(意味)를 연결시켜주고 있어 의도적으로 구성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녹도문(鹿圖文)의 구성이 어찌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지금 볼 수 있는 빈틈없는 짜임새와 암호(暗號)같은 숫자에서 불러일으키는 혼돈(混沌)과 신비성(神秘性)은 한문(漢文)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81자는 아마도 한문(漢文)이 완벽하게 자리잡은 다음인, 기원후 2세기경 이후에 고전(古典)에 능통(能通)한 최치원(崔致遠)에 의하여 재구성(再構成)되고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찌했든 이 천부경은 가로, 세로가 똑같은 글자수로 되어있기에 마치 마방진(魔方陣)과 같이 숫자의 조합(組合)으로 볼 수도 있고, 그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으나, 한자(漢字)를 읽는 순서대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다시 왼쪽으로 줄바꾸어서 차례대로 읽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쉼표가 없는 관계로 어디에서 끊어 읽느냐에 따라 의미(意味)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앞뒤의 문자가 서로 뜻이 통하여 커다란 차이가 없이 골격(骨格)은 변하지 않은채 다양한 해석(解析)이 나올 수 있어서, 이 짤막한 문장(文章)에 묘미(妙味)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가림토정음
* 3世 檀君 嘉勒이 三郞乙 普勒에게 만들도록 한 加臨土正音 38字



一始無始

하나에서 비롯됨은 무(無)에서 비롯한다는 것과 같다.

일시무시(一始無始) ; 여기서 하나(一)는 세상의 처음이자 모든 만물의 근원(根源)을 말하는데, 주로 하늘을 상징하며 사람을 포함한 모든 자연물이 하나(一)인 하늘에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이 하나(一)는 천부경 전체를 통하여 위대하고 거대하며, 유일한 것으로 나오는데, '일'이라고 읽는 것보다는 '하나'라고 읽어야 그 뜻이 제대로 통한다. 여기에서 인용(引用)되는 대부분의 고대문헌(古代文獻)에서도 하나(一)는 단지 한 개를 뜻하는 숫자가 아니고 하늘(天)이나, 신적(神的)인 존재(存在), 그리고 매우 거대한 하나(大)를 뜻할 때 사용되고 있다. 이 점은 우리글에서 하나(一, hana), 하늘(天, hanul), 하나님(神, hananim), 한글(큰글, 大文, hangul)을 보더라도 쉽사리 알 수 있는 것으로, 천부경이 원래 한문(漢文, 漢語, chinese)이 아닌 한글(韓文, 朝鮮語, korean)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최치원에 의하여 한문화(漢文化)되면서 오히려 의미가 복합(複合)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삼일신고(三一神誥) 제1장(章) 허공(虛空)에 보면, "푸르고 푸른 것이 하늘이 아니며, 검고도 검은 것이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질(形質)이 없으며, 시작과 끝도 없고, 위 아래 방향도 없이 텅 비어있으며, 있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10)라고 하여서 20세기(世紀)들어 알려진 우주(宇宙)의 진공(眞空) 상태를 이미 그 당시에 알고서 상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우주탐험(宇宙探險)이 시작되어 사람이 달까지 갖다온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있는 것이지만, 비행기조차 없었던 원시시대(原始時代)에 방향을 알 수 없는 대기권(大氣圈) 밖의 우주 공간(空間)을 정확하게 묘사를 하고 있다. 이맥이 지은 태백일사(太白逸史, Taibaik-ilsa)에는 많은 옛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표훈천사(表訓天詞, Pyohunchonsa)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태초에는 상하사방(上下四方)을 당장 볼 수 없는 암흑(暗黑)이었으며, 과거(過去)와 현재(現在)가 교차(交叉)하면서 단지 하나의 커다란 빛이 밝게 비추었다."(11) 이는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시간(時間)이 형성(形成)되고 어디선가 대규모의 빛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무중력(無重力)의 공간(空間)에서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으며, 그 시간(時間)의 차원(次元)가 달라지면서 대섬광(大閃光)이 일어나 온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는 태초(太初)의 탄생(誕生)에 대한 글이다. 이것은 우주에서 대폭발(大爆發, Big bang)이 일어나 현재의 지구(地球)와 모든 은하계(銀河系)가 만들어졌다는 이론(原始宇宙 大爆發 理論)과 똑같은 것으로, 현대에 이르러 가까스로 얻어낸 결론을 이미 지금으로부터 5000년 이전의 환웅(桓雄) 시대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삼일신고(三一神誥) 제4장을 보면, "너희 땅이 크다고하나 하나로 이루어진 세계(世界)이다. 그 속에 불(火)이 흔들리고 움직이므로서, 바다가 변하여 육지(陸地)가 되어 지금 보여지는 모습이 이루어졌다"(12)라고 씌여있다. 인간이 살고있는 곳이 하나의 지구(地球)이며, 그 가운데는 뜨거운 용암(鎔岩)과 용암의 작용으로 대륙(大陸)이 움직이고, 육지(陸地)가 형성되며, 이 용암 위에 떠있는 판대륙(板大陸)이 움직이다 충돌하면서 지금의 화산(火山)과 지진(地震) 활동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20세기에 밝혀진 맨틀(mantle)과 판구조론(板構造論, Plate Tectonics), 대륙이동설(大陸移動說, Continental Drift Theory)(13)로서, 단지 과거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좀더 분명하게 풀이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삼일신고와 함께 천부경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여기서 말하는 세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천부경의 "일시무시(一始無始)"라는 첫구절은 우리 세계와 인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구절(句節)로서, 거대하고 유일한 존재(存在)이자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천지창조(天地創造)에 대한 말인 것이다.

一析三極無盡本

하나가 쪼개져 삼극(三極)으로 나뉘어도 그 본바탕(根本)은 없어지지 않는다.

일석삼극(一析三極) 무진본(無盡本) ; 석(析)은 나무를 도끼로 쪼개는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르거나 나눈다는 뜻이며, 극(極)은 다하다, 끝나다라는 뜻을 갖고있다. 본(本)은 나무(木)에 지평선(一)을 더하여 나무의 밑부분인 뿌리라는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밑, 기원, 바탕 등의 뜻이 있다.(14) 위 구절을 단순하게 해석하여 보면, 나무토막 하나가 쪼개져 셋으로 나뉘어지더라도 나무이듯이, 만물(萬物)이 원래 갖고있던 본성(本性)과 본질(本質)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산(山)은 산이오, 물(水)은 물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며, 물질(物質)이 아무리 쪼개져도 원래의 속성(屬性)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좀더 깊게 그 뜻을 헤아려 보면 고대(古代)의 물리학(物理學)에 접근하게 된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 인용된 대변설(大辯說 또는 大辯經)의 주석(註釋)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의 기(氣)로부터 세 개의 기(氣)로 스스로 갈라진 것이 극(極)이다. 극(極)은 무(無)이며, 위대한 하늘의 근원(根源)은 곧 삼극(三極)이 통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허전하고 텅비어있으며, 안과 밖이 역시 그러하다."(15) 하나도 무(無)인데 거기서 갈라진 것도 무(無)라고 한다. 즉 아직 물질(物質)이 아니고 물질 이전의 혼합(混合) 및 혼돈(混沌) 상태(狀態)인 기(氣)가 있고, 그 기(氣)에서 다시 세 방향으로 나뉘어져 세 개의 기(氣)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표훈천사(表訓天詞)에서는 약간 다르게 말하고 있다. "천상계(天上界)에서 삼신(三神)은 유일한 상제(上帝)이다. 그 주체(主體)는 곧 일신(一神)이 되지만 신(神)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작용(作用)이 곧 삼신(三神)인 것이다."(16) 단지 작용(作用)이 세가지일 뿐 실체(實體)는 하나라는 이야기이다. 이 두가지 글을 종합하면 이렇다. 아직 혼돈의 상태에서 세가지의 작용을 할 수 있는 기(氣)가 분리되었으며, 세 군데로 분리된 상태에서 서로 교류(交流)하여 하늘의 근원(根源)이 형성되었다는 말이다.
신시(神市) 때에 발귀리(發貴理)는 아사달(阿斯達)에서 제천(祭天)의 예식(禮式)을 끝낸 뒤 노래를 지었는데, 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예로부터 원(圓)이라는 것은 하나이며 무극(無極)이고, 방(方)이라는 것은 둘이며 반극(反極)이다. 그리고 각(角)이라는 것은 셋이며 태극(太極)이다."(17) 원(圓)은 끝(極)이 없이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점(點)이 커진 모양이며, 무궁무한(無窮無限)한 하늘과 우주(宇宙)를 상징한다. 사각형(四角形, 方)은 지구(地球)를 뜻하기도 하나 주변의 땅을 네모지게 둘러논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로 상반(相反)된 끝(極)을 갖고 있다. 그 끝이란 지자기(地磁氣)인 북극(北極, N)과 남극(南極, S)을 말하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이원적(二元的)인 구조(構造)를 뜻하기도 하여서, 서로 다른 두가지의 성질(性質)이 상반(相反)되어 상충(相衝)하고 서로 견제(牽制)하면서 하나의 땅이 형성되었다는 뜻에서 이(二)로 표시한다.
三太極 그리고 세 번째의 각(角)은 평평한 땅에서 용암(鎔岩)이 분출되어 솟은 산(山)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땅 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動植物)과 자연물(自然物)을 대표한다. 수많은 종류가 뒤섞여 혼돈(混沌)스럽지만 서로 역어져서 나름대로 형성한 질서(秩序)를 태극(太極)이라 하여서, 삼(三)은 각(角, 三極)이고, 태극(太極, Taikuk, Taichi)이며, 따라서 음기(陰氣, Um, Yin)와 양기(陽氣, Yang), 그리고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Laotzu Taoteching)에서 말하는 충기(沖氣, Chung)와도 같은 중간매개체(中間媒介體)로서의 세 번째 기(氣)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삼(三)은 삼태극(三太極)을 말하며, 음양(陰陽)이 충기(沖氣)로 인하여 조화(調和)하여 삼태극(三太極)이 형성되고, 여기서 만물(萬物)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알려진 양극(兩極)으로 조화된 태극(太極)의 모양은 후대(後代)에 형성된 것으로, 과거에는 분명히 오른쪽 그림과 같이 삼극(三極)으로 나뉘어져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석삼극(一析三極) 무진본(無盡本)은 하나가 쪼개져 셋으로 나누어지고, 또한 이것이 계속되어도 그 바탕되는 기(氣)는 마르거나 없어지지 않고 무한(無限)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

하늘은 하나, 땅은 둘, 사람은 셋이다.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 고대인(古代人)들은 하늘을 둥근 원(圓, ○)으로, 땅은 네모진 사각형(四角形, □)으로, 사람은 두개의 다리를 벌린 인(人)자 모양에서 비롯된 삼각형(三角形, △)으로 형상화(形象化)하였다. 이러한 상징(象徵)은 하늘과 땅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람이 살고있다는 단순한 진리(眞理)를 문자(文字)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그림과 기호(記號)로 표현한 흔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동서양(東西洋)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이 천부경에서는 하늘, 땅, 사람을 기하적(幾何的)인 도형(圖形)이 아닌 숫자(數)로 보여주고 있다. 하늘은 한없이 넓은 하나(一)로서 하나님(神)이 있는 곳이며, 모든 만물(萬物)을 말할 수 있는 숫자의 시작인 하나(一)라는 것이다. 그리고 땅은 앞서 말하였듯이 상반(相反)된 두 가지의 성질이 하나에 모여있는 것으로 이(二)라고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하늘과 땅의 두가지를 함께 말할 때도 이(二)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교접(交接)하여 만물(萬物)이 태어났다하여 '하늘과 땅(二)' 사이에 작대기 하나(一)를 끼어놓은 모양이자, 일(一, 1) + 이(二, 2) = 삼(三, 3)으로서 삼(三)이라 표시한다.
mandala 대변설(大辯說)의 주석(註釋)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기(氣)는 곧 하늘에 떠있는 빈 것이고, 따라서 그 속에 자연히 들어있는 하나(一)라고 하는 신(神)이 쉽사리 삼(三)을 만든다. 삼신(三神)은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라는 신(神)이며, 기(氣)가 스스로 자유로이 움직여서 가르치고 다스려 삼(三)으로 바뀐 신(神)이 된다. 신(神)은 곧 기(氣)이며, 기(氣)는 허(虛)하여서, 다시 하나(一)가 되는 것이다."(18) 일(一)에서 삼(三)으로 바뀌고 다시 일(一)로 돌아가는 순환체계(循環體系)를 비록 짤막하지만 매우 논리적(論理的)으로 함축(含蓄)시켜 놓았다. 그러니 삼(三)은 기(氣)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어, 기(氣)의 내용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이러한 말이 있다. "도(道, To, Tao)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萬物)을 낳는다. 만물(萬物)은 음기(陰氣)를 등에 업고 양기(陽氣)를 끌어안아 충기(沖氣)로서 조화(調和)를 이룬다."(19) 여기서 충기(沖氣)는 "음양(陰陽)이 서로 조화(調和)되게 하는 화순(和順)한 기운(氣運)으로서, 비어있으며 가득 차지않고 유연(柔軟)한 것이다."(20) 이 유약(柔弱)한 충기(沖氣)로 도(道)가 작용한다. 노자(老子)는 세상의 근원을 도(道)라 하고, 그 도(道)에서부터 하나라는 기(氣)가 나오고 그 기(氣)가 둘로 나뉘어져 음(陰)과 양(陽)이 생기고, 음양(陰陽)이 합하여 삼(三)이라는 것이 생겨서 거기서 만물이 나온다고 한다. 도덕경에서는 삼(三)이 음기(陰氣)와 양기(陽氣) 그리고 음양(陰陽)을 조화시키는 충기(沖氣) 세가지를 말하고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편찬된 열자(列子) 천단편(天端篇)에는 위서(緯書) 역위건착도(易緯乾鑿度)에서 인용된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모양(形態)이 있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천지(天地)는 어디에서 생겼다고 할 것인가? 그러기에 태역(太易)이 있고,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게 마련이다. 태역(太易)이란 아직 기(氣)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기(氣)가 생기기 시작한 상태, 그러면서도 아직 음(陰)과 양(陽)으로 나눠지지도 않은 단계를 태초(太初)라고 한다. 다시 이것이 나눠져서 음양(陰陽)의 두 기운(氣運)이 되므로서, 양(陽)은 하늘을 이루고 음(陰)은 땅을 이루어 모양이 생기기 시작한 것, 이 단계를 태시(太始)라고 이른다. 이처럼 음양(陰陽)의 두 기운이 합쳐져서 생겨난 만물(萬物)이, 각기 제 나름의 성질을 지니기 시작하는 것, 이 단계를 태소(太素)라고 한다." (21) 여기서는 혼돈상태(混沌狀態)를 구분하여 기(氣)가 형성되기 전에 태역(太易)이 있고, 기(氣)가 형성되면서부터 태초(太初), 그 다음에 음양(陰陽)으로 나누어지면서 가벼운 것은 위로,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라앉아 하늘(天, 陽)과 땅(地, 陰)으로 구분되면서 형태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상태를 태시(太始)라 하고, 음양(陰陽)이 조화(調和)를 이루면서 수많은 종류의 물질이 제각각으로 달라지기 시작하는 단계를 태소(太素)라고 칭한다는 말이다. 사실 이름만 달랐지 세차례의 변화 과정은 다를게 없다.
이는 천부경에서도 비슷하게 말하고 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위서(緯書), 천부경(天符經)의 선후관계(先後關係)가 어찌 되는지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일(一)에서부터 삼(三)으로 갈라지고 삼(三)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고 하는 점이 똑같아 서로의 사상(思想)이 같은 근원에서 출발하였으며, 천부경이 도가(道家)와 어느정도 상관관계(相關關係)가 있었음을 시사(示唆)한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천부경에서 모호하게 말해주는 삼(三)의 본체(本體)를 도덕경에서 말하는 기(氣)의 조화로운 혼합체(混合體)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맥(李陌)은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나름대로 간추려서 말하기를, "일(一)은 허공(虛空)이며 일(一)에서 시작하지만 시작과 같지 않고, 일(一)에서 끝나지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밖은 허(虛)하고 안은 비었으나 변함은 없다. 이(二)는 일신(一神)이며 허공(虛空)으로 가서 색(色, 物質)을 돌아오게 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를 주재(主帝)하고 있다. 삼신(三神)이 대제(大帝)가 되어 실로 이루는 것이 많다. 삼(三)은 천궁(天宮)이며 선인(仙人)들이 살면서 많은 선행(善行)으로 만족하고 영원히 쾌락(快樂)을 누리는 곳이다. 사(四)는 세계(世界)이며 많은 별들이 해에 속하듯이 수많은 백성들은 현군(賢君)에 속하고 여기서 태어난다. 오(五)는 사람(人間)과 물건(物件)이며 모두 삼신(三神)에게서 나와 하나의 선인(仙人)으로 돌아간다. 이를 대아(大我)라 한다"(22) 라고 하였다. 일(一), 이(二), 삼(三), 사(四), 오(五) 장(章)을 각각 허공(虛空), 일신(一神), 천궁(天宮), 세계(世界), 인물(人物)로 대표하여 말하고 있으며,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이 삼신(三神)에게서 비롯되어 다시 하나(一神)로 돌아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상고(上古) 문헌(文獻)에서는 일, 이, 삼 모두 하늘, 땅, 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각각의 신(神)이 있다고 하였다. 표훈천사(表訓天詞)에서는 "삼신(三神)은 천일(天一)과 지일(地一)과 태일(太一)이다."(23) 라고 하여, 하늘이자 신(神)이고 위대한 존재임을 복합하여 나타낼 때 천일(天一)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에는 "상계(上界)의 주신(主神)은 그 호(號)를 천일(天一)이라 하며, 하계(下界)의 주신(主神)은 지일(地一), 중계(中界)의 주신(主神)은 태일(太一)이라고 한다" (24) 라고 하여 하늘에 계신 하느님, 즉 천신(天神)을 천일(天一)이라고 표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일(地一)은 지신(地神), 인일(人一) 또는 태일(太一)은 태신(太神)을 말하는 것이어서, 여기에서의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은 천신(天神)은 일(一), 지신(地神)은 이(二), 인신(人神) 또는 태신(太神)은 삼(三)으로 대표한다는 것이다.

一積十鉅無櫃化三

하나씩 쌓여 열(十)이 되고 가득차면 셋으로 바뀐다.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櫃化三) ; 십(十)은 동서(一)와 남북(ㅣ)과 중앙이 모두 갖추어져 전부와 일체를 뜻하는 모양에서 비롯된 것이고, '궤'는 궤(櫃)와 같이 그릇을 담는 함이라는 같은 뜻을 갖고있지만 다하다, 텅비어있다라는 뜻도 갖고 있으니, 무궤(無궤)라 함은 하나씩 더해진 숫자가 열(十)이 되고, 이어서 무한정(無限定)으로 늘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수많은 것이 삼(三)으로 바뀐다고 한다. 앞서 말하였듯이 삼(三)은 삼극(三極)을 이루는 각(角)이요, 태극(太極)이며, 이 태극에서 형성된 수많은 만물(萬物)을 통칭(統稱)한다. "만물(萬物, 庶物)은 모두 무궁(無窮)하나 무궁이 더 영원(永遠)하여 만물(萬物, 庶物)인 것이다. 세상에 머무는 것이 사는 것이요,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죽는 것이다. 죽음이란 것은 영원한 생명(生命)의 근본이다. . . . 천하의 모든 물건은 태초(太初)부터 있었으며, 진화(進化)하고, 순환(循環)하므로서 그 존재(存在)가 있는 것이다." (25)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 나오는 이맥의 글이다.
이맥은 만물(萬物)의 세계(世界)에 대하여 좀더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만물이 만물인 것은 각자 그 한계(限界)가 있기 때문이라 한다. 그렇지만 탄생(誕生)과 진화(進化), 사멸(死滅), 그리고 죽으므로서 새로운 탄생(誕生)을 맞이할 수있다는 순환(循環) 속에서 그 존재(存在)는 영원(永遠)하다고 한다. 태극(太極)에서 탄생된 수많은 만물은 각자 자기 할 바를 다하고 다시 자신들의 근원지(根源地)로 환원된다. 그렇지만 그 세계는 무궁무진(無窮無盡)하여 다시 끊임없이 새로운 만물이 생성(生成)된다. 만물이 태어나면서 그 모두는 하나의 생명체(生命體)로서 서로를 분간(分揀)하기 위하여 각자의 이름(名)을 부여받고, 그 이름은 하나씩 증가하면서 무리를 이루어 거대한 집합체(群)를 형성하게 된다. 그 수많은 이름 속에서 서로를 분명하게 알기위하여는 언어(言語)가 필요하게 되고, 언어를 갖고 살다보면 각자 해야할 일과 하는 일의 가치(價値)를 알게된다. 그러므로서 진화(進化)하게되고, 그 후대(後代)는 이를 이어받아 다시 후대에게 넘겨주어 영속(永續)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의 골자(骨字)는 이맥이 말한 것으로서 필자는 단지 이를 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이미 확실하게 만물이 속한 세계를 설명하고 있어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는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된다.
한없이 영속(永續)하지만 그 각자는 한계적(限界的)인 생명을 갖고있다. 이것이 만물의 속성이자, 곧 삼(三)의 세계이며, 태극(太極)의 절묘한 움직임에 의하여 그 모든 것이 결정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삼국시대 이전의 나라이었던 마한(馬韓)(26)에서는 이 원리(原理)를 이용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根本)으로 삼았다. 마한세가(馬韓世家)에 나오는 신시(神市)의 가르침을 보면 이렇다. "땅으로서 다스리고자 할 때는 하나씩 쌓아 음기(陰氣)를 돋우고, 전체를 채워 양기(陽氣)를 만들고, 욕심을 내지 않아 충성(忠誠)을 하게한다."(27) 이 아리송한 말은 삼태극(三太極)을 "일적십거무궤(一積十鉅無櫃)"라는 구절에 대입(代入)하여 적용(適用)시킨 것으로, 일적(一積)이 음기(陰氣)이고, 십거(十鉅)는 양기(陽氣)이며, 무궤(無櫃)는 충기(沖氣)라는 말이다. 이것들이 합하여 태극(太極)이라는 조화로운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음(陰)이 양(陽)으로 될 수 있으며, 양(陽)은 다시 십(十)이라는 완전한 일체(一切)를 지향(志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음기(陰氣)라 하는 것은 주변에서 하나씩 덧붙이는 것이고, 이 음기(陰氣)가 하나씩 쌓여 양기(陽氣)를 형성하며, 양기(陽氣)는 다시 양기(陽氣)의 중심(中心)으로 집중하여 완전(完全)하게 된다는 의미를 갖고있으며, 충기(沖氣)는 음기(陰氣)와 음기(陰氣)에서 바꿔진 양기(陽氣), 그리고 중심체의 양기(陽氣), 양기(陽氣)에서 바꿔진 음기(陰氣),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울타리가 필요없이 진심(眞心)으로 나라를 위하게 하는 충성심(忠誠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시 천부경 원문(原文)을 살펴보면, 하나씩 모으는 음기(陰氣)와 그 것을 집중시키는 양기(陽氣), 그리고 음양(陰陽)을 함께 묶어주는 정신(精神)이 모두 화합(和合)하여 일체(一體)를 형성(形成)하므로서, 삼(三)으로 대표(代表)하여 말할 수 있는 신적(神的)인 세계(世界), 즉 삼일(三一)로 지향(志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人間)과 만물(萬物)이 조화를 터득하면 신선(神仙)이나 신(神)으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삼(三)이 있기에 오히려 일(一)이 존재한다는 역설(逆說)을 은근히 내포(內包)하고 있다. 그러니 "화삼(化三)"이라는 말은 사람과 함께 수없이 늘어나는 만물(萬物)이 서로 조화하여 삼(三一, 人神)이 될 수 있지만, 이는 삼(三)이 바로 일(一)과 이(二)에서 비롯된 것이라, 일(一)과 이(二) 또한 인간세계와 마찬가지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天二三地二三人二三

하늘도 셋으로, 땅도 셋으로, 사람도 셋으로 된다.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 천일(天一)에서는 일(一), 이(二), 삼(三)이라고 각각의 숫자를 부여(附與)하였던 것이 여기의 천이(天二)에서는 삼(三)으로 통일하고 있다. 바로 앞에서 일(一)이 쌓여져 다시 삼(三)으로 바뀐다고 하였는데, 그 말을 다시 한번 다른 방법으로 확인하여 강조하고 있다. 하늘과 땅, 사람을 모두 삼(三)이라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모두 삼(三)으로 대표되는 태극(太極)으로 수렴(收斂)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삼신(三神)은 천일(天一)과 지일(地一)과 태일(太一)이기에, 하늘이자 신(神)이고 위대한 존재임을 복합하여 나타낼 때 천일(天一)이라고 적는다. 이미 천일(天一)로서 신성(神性)을 부여하였는데 왜 구태어 천이(天二)를 등장시켜 그 하부구조(下部構造)에 해당하는 삼(三)이라 하였을까. 천일(天一)과 천이(天二)는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기에 천(天)이 일(一)에서 삼(三)으로 달라지게 되었을까.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인용된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삼신설(三神說)에 이런 말이 있다. "신시(神市) 나리(氏)께서 존중(尊重)하게 여긴 것은, 천일(天一)에서 물(水, 雨)이 생기고, 지이(地二)에서 불(化)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위치를 잘 이용하여 스승의 길로 삼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으며, 천하가 이를 본받게 된다."(28) 여기서 천일(天一)은 하늘, 지이(地二)는 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하늘에서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가 내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땅속에서는 뜨거운 용암(鎔岩)이 수시로 솟아나와 공기보다 가벼운 불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 물과 불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말하면 가볍고 비어있는 하늘(天)에서 무거운 비(雨)를 내려주고있으며, 무겁고 가득차있는 땅(地)에서 가벼운 불(火)을 올려주고 있다. 하늘이 가볍지만 무거운 것이 있으며, 땅이 무겁지만 가벼운 것도 갖고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늘과 땅 모두 이중성(二重性)을 띄고 있으며, 사람이나 동식물(動植物) 또한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되어 있어 세상의 모든 것이 이중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하늘을 천일(天一)이라 하고 땅은 지이(地二)라고 하여 서로 같은 지위에 두지 않고, 천지(天地)는 일이(一二)라고 단순하게 수식(修飾)하고 있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 하늘과 땅, 사람이 각각 일(一), 이(二), 삼(三)으로 대표할 수 있으며, 천지인(天地人) 모두 일(一)을 덧붙여 신격화(神格化)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땅은 이(二)라는 동어반복(同語反覆)을 사용하였다.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지은 행촌(杏村) 이시중(李侍中)은 "도(道)가 하늘에 있으면 삼신(三神)이라 하고, 사람에게 있으면 삼진(三眞)이라 하며, 그 근본을 말한다면 하나 그 자체이다. 오로지 하나인 것(唯一)을 도(道)라 하며, 본체(本體)와 현상(現象)이 둘로 나눠지지 않은 것, 즉 불이(不二)는 법(法)이다"라고 하였다. (29) 여기서 불이(不二)는 비록 하나이지만 이미 둘로 나누어진 상태를 염두(念頭)에 두고 그 두가지가 융합(融合)된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구분(區分)이 되기 전(前)이 도(道)이고, 구분이 되었지만 융합(融合)된 것이 법(法)이라는 말이어서, 하나 자체는 이론적(理論的)으로는 본체(本體)와 현상(現象)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모두 본체(本體)와 현상(現象)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은 본체(本體)이며, 천이(天二), 지이(地二), 인이(人二)는 그 현상(現象)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ohang 그렇다면 하늘과 땅의 현상(現象)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표훈천사(表訓天詞)를 통하여 알아 보도록 하자. "하늘 아래 두루있으면서 오제사명(五帝司命)을 주관(主管)하는 자(者)를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하며, 땅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령성효(五靈成效)를 주관하는 자(者)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 한다." 오제(五帝)는 흑제(黑帝), 적제(赤帝), 청제(靑帝), 백제(白帝), 황제(黃帝)를 말하며, 오령(五靈)은 태수(太水), 태화(太火), 태목(太木), 태금(太金), 태토(太土)를 말하는데, 태수(太水)는 북쪽에서 검은색(黑色)을 주관(主管)하며, 태화(太火)는 남쪽에서 붉은색을, 태목(太木)은 동쪽에서 푸른색을, 태금(太金)은 서쪽에서 흰색을, 태토(太土)는 중앙에서 노란색을 주관(主管)한다고 한다.(30) 즉 하늘에도 하늘 위와 아래가 있고, 아래에서는 다시 다섯으로 나뉘어 하늘의 역할(役割)이 서로 구분되며, 땅에서도 위와 아래가 있고, 아래에서는 다섯으로 나뉘어 구분(區分)된 역할을 맡고있다 한다. 이 모든 것을 삼신(三神)이 지휘(指揮), 감독(監督)하는 것으로 좀더 세분(細分)된 계층구조(階層構造)를 말하고 있다. 그러니 하늘의 위, 아래는 하늘의 본체와 현상을, 또한 이를 천일(天一)과 천이(天二)로 말하는 것이며, 땅에도 위, 아래가 있어 그 본체와 현상을 지일(地一)과 지이(地二)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각기 하늘과 땅에서 실질적(實質的)으로 업무(業務)를 주관(主管)하는 자(者)들이며, 이를 각각 천이(天二)와 지이(地二)로 대표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이 교접(交接)하여 나온 사람(人)도 위, 아래가 있고, 이를 본체(本體, 마음)와 현상(現象, 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다시 인일(人一)과 인이(人二)로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이라는 글귀를 보게되면, 상부계급(上部階級)이 아닌 하부계급(下部階級)으로서 이러한 현상적(現象的) 세계(世界)를 모두 삼(三)으로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윷놀이판

* 윷놀이판 : 國立 民俗博物館 所藏

大三合六生七八九

으뜸되는 셋이 모이면 여섯이 되며, 이어서 일곱과 여덟, 아홉이 된다.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 ; 대(大)는 사람이 팔을 넓게 벌리고 있는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존귀(尊貴)하다, 으뜸이다라는 뜻도 있으며, 합(合)은 삼각형(三角形)과 사각형(四角形)이 모여있는 모양으로 여러 입(口)이 하나로 뭉친다는 뜻이 있다. 이 구절(句節)에서 육(六)이 하나가 더 있어야 하지만 전체 짜임새를 위하여 줄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일(一), 이(二), 삼(三)에서 육(六)과 칠(七), 팔(八), 구(九)라는 숫자가 만들어지는 방법(方法)을 기술(記述)하고 있다. 이 다음 구절인 사(四), 오(五)를 포함하면 구(九)까지의 숫자를 보여주고 있어, 천부경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미 십진법(十進法)이라는 산술개념(算術槪念)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삼(三)이라는 숫자에는 3 이상의 수를 모두 포함하기도 하여 처음에는 단지 일(一), 이(二), 삼(三)이라는 세 개의 숫자 만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1)
하늘과 땅, 사람을 대표하는 하나(一), 둘(二), 셋(三)은 모든 만물(萬物)의 생성(生成)과 수많은 변화(變化)의 원리(原理)를 찾아볼 수 있는 숫자로서 숫자 중에 으뜸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으뜸되는 셋(大三)은 하나(一), 둘(二), 셋(三)을 말하며, 이것이 모두 합하여 여섯(六)이 만들어지고, 여섯에 다시 하나(一), 둘(二), 셋(三)을 각각 합하면 일곱(七)과 여덟(八), 아홉(九)이 만들어진다. 주역(周易 또는 易經, Iching)에서 말하는 도(道)에는 천도(天道), 인도(人道), 지도(地道)의 삼재(三材, 三才能)가 있는데, "삼재(三材)를 함께하여 둘로 나누었더니 육(六)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육(六)이 삼재(三材)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삼재(三材)의 도(道)이다. 도(道)가 다르게 바꾸어진 것이며, 이를 효(爻)라고 하는 것이다."(2)라고 말하고 있다. 즉 도(道)를 셋으로 구분하고 다시 셋을 둘씩 더 구분하여 도(道)를 여섯가지의 기본적인 모양(象)으로 분류(分類)하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본수(基本數) 가운데 육(六)은 짝수이자 음수(陰數)로서, 삼(三)으로 대표되는 사람(人)과 만물(萬物)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하늘과 땅, 그리고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방위를 모두 합하면 여섯 개의 방위(方位)가 만들어져서, 현재의 위치(位置)를 삼차원(三次元)에서 판별(判別)할 수 있게끔 한다. 입체(立體)로 말하면 육면체(六面體)로서, 그 육면체(六面體) 속에서 동서(東西)를 연결하는 좌표(一)와, 남북(南北)을 연결하는 좌표(ㅣ), 천지(天地)를 연결하는 좌표(十 또는 二) 등, 세 개의 좌표(座標)를 설정(設定)하여 삼차원(三次元) 공간(空間) 속의 위치(位置)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인용된 진역유기(震域留記)에서는,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제(齊, Chhi, A.D. 479~502)나라 풍속(風俗)에는 여덟 신(八神)에게 드리는 제사(祭祀)가 있다. . . . 즉 팔신(八神)은 여덟 부족(部族)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 당시에는 매우 성행(盛行)하였다"(3)라는 말이 있다. 즉 경배(敬拜) 대상이 조상(祖上)에서부터 비롯하였으며, 나중에는 그 조상이 신(神)으로 신격화(神格化)되었다는 것으로서, 팔(八)이란 숫자에 특별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경(易經)을 풀이하여 놓은 계사전(繫辭傳)에는, "역(易)에는 태극(太極)이 있다. 여기에서 양의(兩儀)가 생기며 양의(兩儀)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四象)은 팔괘(八卦)를 낳는다. 팔괘(八卦)는 길흉(吉凶)을 정하고, 길흉(吉凶)은 커다란 선악(善惡)의 결과(結果)를 만든다."(4) 여기에서 양의(兩儀)는 음(陰)과 양(陽), 사상(四象)은 소음(少陰), 소양(少陽), 노음(老陰, 太陰), 노양(老陽, 太陽)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에서부터 계속 둘로 분리되어 파생되는 수(數)에 음(陰)과 양(陽)의 성격을 부여(附與)하고, 그에 맞는 의미와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hado 동양사상(東洋思想)의 주류(主流)는 모든 사물(事物)과 현상(現象)을 음양(陰陽)의 두가지 성격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數)에 있어서도 양수와 음수로 구분하여 홀수를 양(陽)으로, 짝수를 음(陰)으로 규정하였다. 이같은 사례는 역경(易經)에서도 나타나는데, 하늘에 속한 양수(陽數)를 일(一), 삼(三), 오(五), 칠(七), 구(九)로 보며, 땅에 속한 음수(陰數)를 이(二), 사(四), 육(六), 팔(八), 십(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양수(陽數)를 모두 더한 25를 천수(天數)라 하고, 음수(陰數)를 모두 더한 30을 지수(地數)라 하며, 천지(天地)가 합쳐진 수(數)인 55(五五)를 변화(變化)가 일어나고 귀신(鬼神)이 움직여서 기묘(奇妙)한 일이 이루어지는 숫자라고 한다.(5) 천지수(天地數)인 55는 하도(河圖)에서 보이는 수(數)와 같은 것으로서, 복희씨(伏犧氏, 伏羲)는 이 하도(河圖)를 바탕으로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른쪽 그림이 하도(河圖)이다. 여기에서 음(陰)은 ●, 양(陽)은 ○으로 표시되는데, 중앙과 네 방향에 나열되어 있는 동그라미들 가운데 음(陰)은 음(陰)대로, 양(陽)은 양(陽)대로, 세 개의 숫자 집합(集合)을 추려 각 방향에서 합쳐진 수(數)를 육효(六爻)의 모양으로 바꿔놓으면 팔괘(八卦)가 만들어진다.(6)
즉 최초의 팔괘(八卦)는 동서남북과 중앙에 이미 정해져 있는 여러 모양(象)들을 양수(陽數)와 음수(陰數)의 조합(組合)으로 대표하여 놓고(象數), 그 숫자들의 합으로 다시 세분된 변화(變化)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계사전(繫辭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팔괘(八卦)를 줄지어 늘여놓으니 그 속에 강하고 약한 모양(象, 形象)이 들어있다. 이어서 다시 겹쳐놓으니 그 움직임(爻, 動作)이 들어있다."(7) 자연(自然)의 무궁한 변화(變化)는 그 근원인 하늘이자 하나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렇기에 모든 변화는 그 하나를 구분하고 구분하여서 나오는 숫자, 즉 곱하고 곱한 것을 그 이름이자 언어인 숫자로 대표하여 말할 수 있으며, 수만가지 자연계의 변화가 방향(方向)과 관계되어 그 속성(續性)이 생기고 결정(決定)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팔괘(八卦)를 통하여 세상의 무궁한 변화를 읽을 수 있으며, 예측(豫測)도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팔(八)이란 숫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있는 인간(人間)의 위치(位置), 즉 어느 곳에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나 만물이 달라질 수 있기에, 그 위치를 결정지어주는 네 방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다.
단군(檀君)시대에 천제(天祭)를 드릴 때, 독특한 제례(祭禮) 방법이 있었다. 이름하여 삼륙대례(三六大禮 또는 三六九拜)라 하는 것으로, 단군세기(檀君世紀)를 보면 이런 기록(記錄)이 나온다. "단군(帝)께서 삼랑을(三郞乙) 보륵(普勒)을 불러 신선(神仙)인 종(倧)과 전(佺)의 도(道)를 묻자, 보륵은 엄지손가락을 교차(交叉)하고, 오른손을 얹어 삼육대례(三六大禮)를 드리고 말하였다. . . . 이리하여 조정(朝廷)에서는 종(倧)의 가르침(訓示)이 있었고, 백성(百姓)들에게는 전(佺)의 타이름(責望)이 생겼다."(8) "단군(檀帝)께서 친히 절을 하시는데, 초배(初拜)는 세 번, 재배(再拜)는 여섯 번, 삼배(三拜)째는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禮)를 드렸다. 따라온 무리들은 특별히 열번을 드렸으며, 이를 삼육대례(三六大禮)라 한다." (9) 이어서 단군세기(檀君世記)에 나오는 글을 보도록 하자. "삼육대례(三六大禮)에서 엄지손가락을 교차(交叉)시키는 이유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자(子)를 가르키고, 왼쪽 엄지손가락은 해(亥)를 가르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른손을 위에 얹는 것은 태극(太極)을 형상하기 때문이다. . . . 마음을 가다듬듯이 손을 모아 하늘을 생각하고, 꿇어앉아 기(氣)를 순화(純化)시킨다. 순한 기(氣)를 무릎에 모이게하여 땅에 감사드린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은 조상에게 보답(報答)하는 것이다."(10)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세 번, 여섯 번, 아홉 번 등으로 삼(三)이 계속 더해지고 있으며, 몇번 절을 하는가 하는 것은 곧 경배(敬拜)하는 대상(對象)의 숫자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초배(初拜)의 삼고(三叩)는 삼신(三神)을, 재배(再拜)의 육고(六叩)는 삼신(三神) 아래의 여섯 신(神), 삼배(三拜)의 구고(九叩)는 그 아래의 아홉 신(神)에게 절을 하는 것이어서, 각기 숫자에 해당하는 신(神)들에게 인사를 드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大衆)들이 열번(十叩)을 하므로서, 십(十)이란 숫자가 의미하듯이 제례(祭禮)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전체의 인사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로서 국왕(國王)과 신하(臣下), 그리고 온 국민(國民)이 모든 신(神)에게 최대한의 예(禮)를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삼(三)으로 대표되는 인간과 만물은 다시 음(陰)과 양(陽)으로 구분되어 육(六)이 되며, 이 육(六)은 다시 주변 환경과 그 속에 살게되는 인간이라는 음양(陰陽)의 상대적(相對的) 개념(槪念)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있는 주변 환경을 음(陰)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환경 속에서 능동적(能動的)으로 살고있는 사람과 동식물들을 양(陽)으로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환경(自然環境)을 대표하는 사(四)와 육(六), 팔(八)은 원래 음수(陰數)이면서도 인간과 주변 환경과 관계되어 상대적으로도 음(陰)이 된다. 다시 천부경 구절(句節)로 돌아가 보면, "대삼합육(大三合六)"은 간단하게 생각하여 하늘에서의 두가지, 즉 천일(天一)과 천이(天二), 땅에서의 두가지, 즉 지일(地一)과 지이(地二), 사람에서의 두가지, 즉 인일(人一)과 인이(人二)를 합한 것을 말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생칠팔구(生七八九)"는 앞서 말하였듯이, 육(六)에서 다시 일(一), 이(二), 삼(三)을 각각 합하여 칠(七)과 팔(八), 구(九)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다음 음수(陰數)인 십(十)에 이르게 되면 신(神)의 조화로 인하여 다시 삼(三)으로 환원(還元)되는 완전한 수(數)이어서, 십(十)에 하나 못미치는 구(九)에서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수(數)가 끝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구(九)는 삼(三)의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최고(最高)의 숫자라고 할 수 있다.

運三四成環五七

셋과 넷을 움직여 다섯과 일곱을 돌아가게 한다.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 : 운(運)은 군대(軍隊)가 움직이는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돌리다, 움직이다라는 뜻이 있으며, 사(四)는 네모진 모양(口)을 사방(四方) 또는 네부분으로 갈라논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휴애거사(休崖居士) 범장(范樟)이 지은 북부여기(北夫餘記)를 보게되면, "기유(己酉) 3년(B.C. 192)에 경향분수(京鄕分守)의 법(法)을 세워, 수도(首都)에서는 천왕(天王)이 직접 경비(警備)를 총지휘하며, 지방(地方)에서는 네군데로 나누어 요새(鎭)를 설치하니, 마치 윷판과 같아 용도(龍圖)의 싸움을 보는 듯하고 그 변화를 알게되더라"(11)라고 쓰여있다. 동이족(東夷族)의 후손(後孫)인 한민족(韓民族)에게 윷놀이는 수천년을 넘게 계속 전승(傳承)되고 있는 토속적(土俗的)인 놀이이다. 그런 윷판(천부경 2의 첫번째 사진)처럼 나라를 네 구역(區域)으로 나누어 서로 경쟁(競爭)시키면 효율적(效率的)으로 나라를 경영(經營)하게 된다는 역사적(歷史的)인 기록이다. 또한 마한세가(馬韓世家)를 보게되면, "윷놀이를 만들어 이로서 환역(桓易)을 강연(講演)하니,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문자(文字)로 적어놓은 천부경(天符經)의 남겨진 의미일 것이다" (12)라는 말이 나온다. 즉 천부경이 나온 이후에 대중(大衆)을 위하여 윷놀이를 고안(考案)하였으며, 주역(周易, 易經)과 비슷한 책으로서, 세상 만물의 변화(變化, 易)와 그 이치(理致)를 담은 환역(桓易, Hwanyok)이 있어, 이 윷놀이를 통하여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다는 말이다. (13) 여하튼 대부분의 상고(上古) 문헌(文獻)에서는 사(四)가 국토면적(國土面積)을 가르거나, 하루의 시간(時間)을 구분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환(環)은 고리 모양의 옥(玉)에서 비롯된 것으로 돌다, 감싸다, 선회(旋回)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오(五)는 하늘(天, 陽)과 땅(地, 陰)이 합치는 모양( 二 + X = 五 )에서 비롯하였다.
단군세기(檀君世記)를 보면 이런 기록(記錄)이 나온다. "임자(壬子) 12년(B.C. 2229) 신지(神誌) 귀기(貴己)가 칠회력(七回曆)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14) "해가 움직이는 것을 낮이라 하고, 달이 움직이는 것을 밤이라 하며, 별의 순환(循環)과 춥고 더운 것을 관측(觀測)하여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15) "모두 함께 7일을 주기(週期)로 삼신(三神)에게 나아가 맹서(盟誓)하니, 삼홀(三忽)이 깨닫고 구환(九桓)이 배운다. . . . 이로서 3, 7일을 정하여 모두 모여 훈계(訓戒)를 들었다."(16) "자부선생(紫府先生)이 일곱 번을 주기로 신(神)께 제사드리는 책력(冊曆)을 만들었다. . . . 일곱 번을 주기(週期)로 신(神)께 제사드리기로 정하였다." (17) 또한 신시본기(神市本記)에서는, "신시(神市) 시대에는 칠일(七日)을 돌아가며 신(神)에게 제사지내는 책력(冊曆)이 있었다. 첫째 날에는 천신(天神)에게, 둘째 날에는 월신(月神)에게, 셋째날에는 화신(火神)에게, 넷째 날에는 수신(水神)에게, 다섯째 날에는 목신(木神)에게, 여섯째 날에는 금신(金神)에게, 일곱째 날에는 토신(土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내었다."(18) 라고 하였다. 즉 칠회력(七回曆)이라 하여 7일 주기(週期)로 제사드리는 것에서부터 나중에는 7일을 각각 다른 신(神)을 정하여 제사드리게 되었다 한다.(19) 이상으로 미루어 칠(七)이라는 숫자는 주로 책력(冊曆)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하늘의 주인이자 양(陽)과 음(陰)을 대표하는 해와 달, 그리고 만물(萬物)의 대표적인 속성(屬性)인 불, 물, 나무, 금속, 흙으로서, 해(太陽)와 달(月)에 다섯가지 요소(要素)가 합쳐진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 인용(引用)된 표훈천사(表訓天詞)에서는 오제(五帝)와 오령(五靈)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 중 오령(五靈)은 물(水), 불(火), 흙(土), 나무(木), 금속(金屬)을 말하는 것이다.(20) 물은 불을 진화(鎭火)시켜 불을 이기며, 흙은 물을 빨아들여 물을 이기고, 나무는 흙에 뿌리를 박아 흙을 이기고, 금속은 나무를 잘라 나무를 이기며, 불은 금속을 녹여 금속을 이기게 된다. 이 다섯가지(五) 과정(過程, 行)이 계속 반복되어 자연계(自然界)의 순환(循環) 고리가 형성되며, 이를 그리스(Greece)의 원소설(元素說)과 비교하여 오원소(五原素, 5 Elements)라고 불리워 왔다. 고대(古代)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는 우주(宇宙)가 불, 흙, 공기, 물의 네가지 원소(元素)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와 함께 이것들의 근원(根源)인 무한(無限)한 것(apeiron)이라고 하는 다섯번째 원소가 있다고 주장하였다.(B.C. 560) 그 후 이 원소들이 서로 싸우는 성질이 있다거나, 각기 신(神)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에 이르러 건열냉습(乾熱冷濕)의 4개의 성질(性質)로 바꾸어진 것이다.(21)
기초원소(基礎元素, Fifth Elements)와 물, 불, 흙, 공기의 네가지 원소를 합하면 다섯가지가 되며, 오령(五靈)이나 오행(五行)과 비교하였을 때, 나무와 금속이 빠지고 대신 공기와 제5원소인 기초원소가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공기(空氣)와 기초원소는 천부경에서 말하고있는 하늘이라 하는 일(一)의 본체(本體)와 현상(現象)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Greece)의 원소설(元素說)이 처음에는 5 원소에서 시작되었으며, 또한 신성(神性)을 부여하였다는 점에서 오행설(五行說)과 비교를 해볼 수 있다. 오행(五行)은 오행상극(五行相剋) 등의 수많은 범위에서 적용(適用)되는 만큼, 그 기원(起源)에 대하여도 갖가지이다. 그렇지만 칠회력(七回曆)의 연원(淵源)을 보면 그 기원(起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낮과 밤을 안녕(安寧)하게 지키는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이 있었으며, 낮(日神)이 밤으로 바뀌면서 달이 뜨고, 그리하여 밤(月神)이 낮을 이기며, 다시 새벽이 되면 해가 떠서, 낮이 밤을 이기는 반복이 계속된다. 마찬가지로 불(火神), 물(水神), 나무(木神), 금속(金神), 흙(土神)이 있어, 서로 이기고 지고 하는 순환(循環)이 계속되기 때문에, 만물에 신(神)이 있다고 생각하는 고대인(古代人)들에게는 이 다섯가지 요소(要素)가 신적대상(神的對象)으로 등장(登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칠회력(七回曆)은 각각의 하루를 편안하게 지내게끔 보살펴주는 신(神)들을 위하여 제사(祭祀)를 드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의 기반(基盤)이 되고, 현재의 1주(週)가 만들어진 것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는 이런 글이 있다. "자부선생(紫府先生)이 . . . 해와 달의 움직임을 측정하고, 이어서 오행(五行)의 이치(理致)를 연구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작성하니 이것이 칠성력(七星曆)의 시작이다."(22) 여기서도 칠회력(七回曆)이나 칠성력(七星曆)은 해와 달, 그리고 오행(五行)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은 음양(陰陽)과 5원소(元素)를 각기 구분하여 그 속성(屬性)의 상관관계(相關關係)를 우선하여 말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도 음(陰)과 양(陽)이 순환하며, 다섯가지 과정(過程)이 계속 반복(反復)되어 순환(循環)한다는 것에 그 기원(起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천체(天體)와 지구(地球)의 움직임(運動)과 그 순환(循環)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附與)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공간(空間)을 지각(知覺)하게 되어 그 기하학적(幾何學的)인 규모와 거리를 알게되었던 것이다.
주비산경 고대(古代) 사회(社會)에서 인구(人口)가 많아지고 나라가 넓어지면서 지도자(指導者)들은 이를 기록할 수 있는 글자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매년 순환되는 별자리와 계절(季節)로 인하여 책력(冊曆)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산술(算術)이 생기고, 그와 함께 늘어나는 자기 영토(領土)의 면적(面積)을 기록하기 위하여 토지(土地) 측량(測量)이 필요하게 되고, 여기서 기하학(幾何學)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는 주비산경(周비算經, Choupisuanching)(23)이라고 하는 천문학(天文學)에 관한 고대(古代)의 수학책(數學冊)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책에는 유명한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세기)의 정리(定理)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다. 오른쪽 그림이 그것인데, 즉 직각삼각형(直角三角形)의 가로, 세로의 비례(比例)가 3 : 4 이면 그 빗금의 길이는 5라는 공식(公式)을 피타고라스 이전에 알고있었다는 말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중앙의 모눈 하나를 중심으로 3 : 4 : 5 비율(比率)의 네 개의 직각삼각형이 둘러져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각 변이 7 모눈으로 분할(分割)된 정사각형(正四角形)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통하여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으로, 삼(三)과 사(四)를 이용하여 오(五)를 만들 수 있으며, 삼(三)에 사(四)를 합하여 칠(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하여 직각(直角)으로 이루어진 두 변(邊)의 길이를 알면 그 빗금의 길이와 전체 면적(面積)을 알 수 있기에, 불규칙한 모양으로 이루어진 땅의 면적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당시에 이러한 방법은 매우 혁신적인 측량법(測量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천부경 본문(本文)에서 말하는 "운삼사(運三四) 성환오칠(成環五七)"을 살펴보면, 삼(三)과 사(四)를 움직여서 오(五)를 만들고, 삼(三)과 사(四)를 합하여 칠(七)을 만들 수 있으며, 동시에 삼(三)과 사(四)는 오(五)와 칠(七)을 만들게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계속 수(數)를 증가시키더라도 같은 방법(方法)과 비율(比率)을 적용하여 많은 수(數)와 면적(面積) 등을 계산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이 모든 것이 각각 나름대로의 의미(意味)와 용도(用途)를 갖고 순환(循環)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하나의 묘한 흐름 속에 수없이 왔다갔다하면서 달리 사용(使用)하여도 그 본성(本性)은 달라지지 않는다.

태극 일묘연(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 ; 연(衍)은 넘치다, 흐르다, 퍼지다, 아름다운 모양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만(萬)은 전갈의 모양에서 비롯되었지만 많은 수를 나타낸다. 용(用)은 복(卜)과 중(中)이 합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점을 쳐서 곧 시행(施行)한다는 뜻을 나타내며, 쓰다, 행하다, 작용, 통하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의 묘한 모양에서 나타나는 흐름은 계속 반복하여 사용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그 근본 또한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시(神市) 때의 발귀리(發貴理)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커다란 하나(大一)에는 극(極)이 있어 양기(良氣)라 부르고,
없다가 있고 비어있다 가득 차면서 묘한 조화(調和)가 이는구나.
삼일(三一)은 그의 모습(體)이며, 일삼(一三)은 그의 작용(用)이니,
서로 묘하게 섞여져 하나로 돌지만 그 모습과 작용은 갈라지지 않네.
끝없이 공허(空虛)한 곳에 빛(光)이 있어, 신(神)의 모습이라 하고,
무한(無限)한 기(氣)가 영원히 있으니 신(神)이 탈바꿈하였네.
여기에서 참된 사명(使命)이 주어지고, 모든 도리(道理, 法)가 나온다네." (24)
모든 것의 집합체(集合體)이자 단 하나의 거대한 세계(世界), 즉 우주(宇宙, Cosmos)라 말할 수 있는 '하나' 자체(自體)의 드러나는 모습과 또한 그것이 어떻게 작용(作用)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짤막하게 말하고 있다. 여기서 극(極)은 보통 남극(南極), 북극(北極)으로 구분하여 말하는 자기장(磁氣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서로 다른 상반(相反)된 성질이 하나의 덩어리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렇다고 하여도 그 모습, 즉 체(體)로 말하는 물질(物質)이 분리되지 않고, 단지 용(用)이라 말하는 그 두가지 작용(作用)을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는 마치 거울을 마주보고 있는 어떤 사람을 제삼자(第三者)가 보았을 때, 한 사람의 모습이 거울에 반영(反影)되어 두사람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처럼,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은 똑같은 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 거울은 하나의 본성(本性)이자 우주(宇宙)의 특성(特性)이 되기도 하며, 이것을 현대(現代) 물리학(物理學)에서는 자기(磁氣) 파동(波動)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다못해 모든 물질(物質)의 구성인자(構成因子)인 원자(原子)에서도 이 파동적(波動的)인 자기장(磁氣場)은 관찰되며, 물질의 성분(性分) 구성(構成)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근본 성격은 상극(相剋)이자 상반(相反)이다. 그러나 이 두 성격이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는 이런 말이 있다. "환역(桓易)의 모습(體)은 둥근 원(圓)이고 그 작용(用)은 네모진 방(方)이 된다. 겉모양(體)이 없기 때문에 그 속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하늘의 이치(理致)이다. 희역(羲易)은 그 모습이 방(方)이고, 그 작용이 원(圓)이다. 겉모습이 있기 때문에 변화를 알게되니 이것이 하늘의 모습이다. 오늘날의 역(易)은 모두 모습이면서 작용이기도 하다. 스스로 원(圓)이 되고자 하면 원(圓)이 되며, 스스로 방(方)이 되고자 하면 방(方)이 되고, 스스로 각(角)이 되고자 하면 각(角)이 된다. 이것이 하늘의 사명(使命)이다. 그런데 하늘의 근원은 스스로 하나의 거대한 공허(空虛)인데, 어찌 모습(體)이 있다고 할까. 하늘은 본래 모습이 없지만 28개의 별자리(宿)를 보이기에 이를 모습으로 한다. 대개 천하의 모든 물건들은 이름(名)을 갖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 이름이 수(數)를 갖게되는 것이다." (25) 하늘의 변화(變化)를 본받아 역(易)을 만들었으며, 역(易)이 곧 하늘을 반영(反映)한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이 자기 스스로 마음대로 변하여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여러 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太極 현재 동서양(東西洋)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다루어지는 주역(周易, 易經)을 설명한 계사전(繫辭傳)에서는 이 변화(變化)를 숫자, 즉 상수(象數)로 표시하여 점괘(占卦)로 활용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주역에서 55는 천하가 움직이는 천지수(天地數)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다룰수 있는 한계(限界)를 벗어난 것이어서 사람이 쓸 수 있는 숫자는 지수(地數)에서 5를 뺀 50까지라고 한다. 이 나머지 5은 신(神)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대연(大衍)의 수(數)는 50책(策)이나 그것을 쓸 때는 (하나를 뽑아 통 속에 집어넣고 쓰지 않기에) 49책(策)이다. 이것을 대충 반으로 나누어 두가지의 모습, 즉 하늘과 땅으로 구분하고, 하나를 걸쳐 얹어서 세가지 모습, 즉 삼재(三材, 三才)로 구분한다. 이것을 다시 넷씩 세어서 사시(四時)를 만들고, 시초(蓍草) 또는 산가지(算木) 하나를 빼어 손가락 사이에 끼워놓고, 이를 윤(閏)으로 한다. 5년이 되면 다시 윤달(閏月)이 오기 때문에, 다시 또하나의 산가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하나를 걸쳐놓는다. 하늘을 말하는 건(乾)의 수(數)는 216, 땅을 말하는 곤(坤)의 숫자는 144, 모두 합하여 360이 된다. 이것이 1년에 해당하는 날수(日數)이다. 두편(篇)의 책(策)으로 하면 11520, 이것이 만물(萬物)의 숫자이다. 이리하여 네번 헤아려서 역(易)을 이루고, 18번 변하여 괘(卦)를 만든다. 8괘(八卦)로서 조그만 일을 이룬다. 이것을 끌어당겨 펼쳐놓고 같은 부류(部類)에 이어놓으면 천하(天下)의 모든 일이 끝난다." (26)
여기서 두편의 책(策)이란 상경(上經), 하경(下經)으로 나눈 산가지들을 말하며, 건곤(乾坤)의 책(策)을 각각 노양(老陽 -> 少陽), 노음(老陰 -> 少陰)으로 구분하여 계산한다. 양(陽)인 '---'는 1이자 3이어서 3 x 3 = 9이고, 음(陰)인 '- -'는 중간에 3이 하나빠져서 3 x 2 = 6이 되어, 각각의 효(爻)를 구성하게 된다. 이 효(爻)들이 18번 변하여서 6효(爻)로 만들어진 1괘(卦)가 얻어진다. (27) 만물(萬物)을 모두 합한 숫자가 11520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것들이 모이고 합쳐지면서 그 변화가 이루어지고, 그 변화를 어느정도는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주역(周易)은 과거나 현대나 다를 것없이 점술(占卜)의 교본(敎本)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실상 이 주역(周易)은 자연계(自然界)의 수많은 변화(變化)를 통계적(統計的)으로 집약(集約)시켜 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역경(易經)의 위력(威力)은 현대(現代) 물리학(物理學)에서도 관심을 가질 정도이며, 그와 더불어 철학(哲學)이나 기타 분야(分野)에서의 파급(波及) 효과(效果) 또한 상상(想像)을 불허(不許)할 정도로 엄청나다. 실로 방대(尨大)한 분량(分量)의 자료를 정리하여 순서를 매기고, 그 내용을 집약(集約)시킨 것이라서, 단지 몇백년간의 자료(資料)로 이러한 통계(統計)가 이루어졌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삼신(三神)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여러 단계로 구분(區分)하고 세분(細分)하여서 그 변화의 성격과 속성(屬性)을 추려놓은 팔괘(八卦)나 또는 그것을 종합한 역(易)은 모두 하나에서 비롯한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나가 스스로 움직여서 분리되고,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며, 또한 스스로 가르치고 교육하여서 상호간에 관계를 맺게끔하며, 이로서 서로간에 주고받음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태극도(太極圖)이다.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쓴 북송(北宋)의 주돈이(周惇이, 濂溪, 1017~1072)는 태극의 성격(性格)이 "움직임이 극(極)에 달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함이 극(極)에 달하면 다시 움직인다"(28) 라는 말을 하였다. 즉 천부경에서 말하는, 열(十)이 되면 다시 셋(三)이 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올라가면 내려가게되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게 되고, 이러한 순환(循環)과 반복(反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事例)는 파동(波動)이다. 물결이 넘실거리면서 춤을 추지만, 그 속 안에 있는 물질(物質)은 그 자리에서 올라갔다 내려가며 계속 원형(圓形)으로 반복운동(反復運動)을 한다. 그렇다고 하여서 그 물질이 이동(移動)하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묘연(一妙衍)"이란 바로 이 파동적(波動的) 성격(性格)을 말하는 것이다. 이 파동은 현세계(現世界)의 물질을 좌우하는 미립자(微粒子)의 성격(性格)이자, 그 근본(根本)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本文)을 살펴보면, "일묘연(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 용변부동본(用變不動本)", 즉 아무리 출렁거리면서 움직여도, 또는 아무리 태극(太極) 속에서 음(陰)과 양(陽)으로 변화하면서 움직여도, 그 근본(根本)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

본바탕(本)의 중심(中心)은 해(太陽)이며, 따라서 빛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된다.

환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앙명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 ; 심(心)은 사람의 심장(心臟) 모양에서 비롯된 글자로 중앙, 도(道)의 본원(本原)을 뜻하며, 앙(昻)은 오르다, 머리를 들다, 임금의 덕(德)이 높은 모양을 뜻한다. 명(明)은 해와 달을 붙인 모양으로 해와 달이 같이 있어 밝다는 뜻이 있다. 대변경(大辯經)의 주석(註釋)에서 말하기를, "하늘로 부터의 광명(光明)을 환(桓)이라 하고, 땅으로 부터의 광명(光明)을 단(檀)이라 한다."(29) 그리고 태백일사(太白逸史)에서 소개된 환국주(桓國注)에는 "환(桓)은 모든 것이 하나에 들어있는 전체(全體)이며, 광명(光明)이다. 이 전체(全體)는 삼신(三神)의 지혜(智慧)와 능력(能力)이며, 광명(光明)은 삼신(三神)의 참된 덕(德)이다. 곧 우주(宇宙)에 있는 모든 만물(萬物)의 터전이며, 조상(祖上)인 것이다"(30)라는 말이 나온다.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에서 말하는 환(桓)은 주로 환국(桓國), 환인(桓仁), 환웅(桓雄), 환역(桓易) 등으로 주로 나라와 왕(王)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환(桓)이 바로 하늘이자, 하늘에 있는 빛을 말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환(桓)에서 비롯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환(桓)의 한자(漢字)는 홀(笏)이나 팻말, 또는 굳세다는 뜻으로서, 지금 말하는 빛의 의미와는 거의 관계가 없으며, 환(桓)의 중국음은 '후안(huan)', 일본음은 '간(khan)'으로서, 밝은 빛의 의미로 사용된 것은 한글 뿐이 없다. 그러므로 환(桓)은 순수한 우리말이 음역(音譯)된 것으로, '환하다(暉, 瓏)', '희다(白)', '하얗다(白)', '해(太陽)' 등의 매우 밝은 빛을 뜻하는 어휘(語彙)로서, '하늘 건(乾)', '옥고리 환(環)'이나 '알 환(丸)'에 가까운 어휘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환(桓)은 바로 밝은 빛의 원천(源泉)인 '둥근 해(太陽)'라고 볼 수 있으며, 지금의 천부경은 한문(漢文)이 공식(公式) 언어(言語)로서 정착(定着)된 이후에 재작성(再作成)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一)이 '하나'이자 '하느님'이고 '하늘'이 되는 말은 오로지 한글 뿐이 없기에, 천부경의 원저자(原著者)는 바로 한국인(韓國人, 朝鮮族)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해가 있고, 그 옆에 나무가 서있는 모양에서 비롯된 글자인 환(桓)은 그 모양이 보여주듯이 밝은 해를 바라보는 나무, 즉 나무처럼 사람이 서서 보는 모양이다. "태초(太初)에 삼신(三神)이 삼계(三界)를 만들었는데, 물은 하늘과 비슷하고, 불은 땅과 비슷하며, 나무는 사람과 비슷하다. 나무라는 것은 땅에 뿌리를 내려 하늘로 나오는 것이고, 사람 또한 땅에 설 수 있기에 나무처럼 하늘로 나오는 것이니 능히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31)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수록(收錄)된 글이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이 나무와 같이 땅에 서서 태양의 빛과 정기(精氣)를 받고 자라기 때문이며, 그 존재 이유조차 태양이 있기에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태백일사(太白逸史)를 보도록 하자. 여기에 인용된 조대기(朝代記)에서 말하기를, "옛 풍속(風俗)에 광명(光明)을 숭상(崇尙)하여서 해가 신(神)이 되었으며, 하늘이 조상(祖上)이 되었다. 만방(萬方)의 백성들은 서로 믿으며 의심치 않았으며, 아침 저녁으로 경배(敬拜)하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 태양이라는 것은 광명(光明)의 터전이며, 삼신(三神)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람이 빛을 얻어 곡물(穀物)을 경작(耕作)하니 저절로 결실(結實)을 맺었다. 아침에는 동쪽 산에 나란히 올라가 해가 뜨는 곳에 절을 하며, 저녁에는 서쪽 강으로 나란히 ?아가서 달이 뜨는 곳에 절을 한다"고 하였다. (32) 모든 백성들이 밝은 빛을 숭상(崇尙)하여 해를 태양신(太陽神)으로 삼았으며, 태양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많았기에 그 도움에 감사드리기 위하여 매일 태양에게 절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예법(禮法)은 그후 삼륙대례(三六大禮)가 되어 그 의의(意義)를 분명하게 하였다. 3세(世) 단군(檀君) 가륵(嘉勒)의 칙서(勅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천하(天下)의 근본(根本)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중일(中一)에 있다. 사람이 중일(中一)을 잃으면 모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33)
이제까지 천지인(天地人) 모두 각기 신(神)이 있어, 천신(天神, 一一), 지신(地神, 二一), 인신(人神, 三一)을 말하여 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중일(中一)이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의 마음 속에도 하나의 신(神)이 있어, 그 신(神)을 중일(中一)로 한다는 말이다. 여기 천부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세계는 모든 것이 포함되고 태어나며, 그곳에서 소멸(消滅)하고, 또한 그 모든 것이 신(神)의 마음이자, 신(神)의 모습으로 말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사물과 인간에게는 신(神)의 속성(續性)이 있어, 각기 신(神)으로도 될 수 있다는 점을 내포(內包)하고 있다. 그러한 신(神)이 바로 사람의 중심(中心)인 마음 속에 있다는 말이며, 이를 중일(中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중일(中一) 속에는 하늘과 땅을 제대로 파악하고, 하늘이 내려준 운명(運命)과 성품(性品), 그리고 정신(情神)을 제대로 알 수 있고, 스스로 그 길(道)을 찾아 가게되는 것이다. 단군세기(檀君世紀)를 쓴 행촌(杏村) 이암(李암, 1296~1364)은 "그 성품(性品)의 혼(魂)을 깨닫는다는 것은 천신(天神)의 근원(根源)과 같으며, 그 운명(運命)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은 자연(自然) 산천(山川)의 기(氣)와 마찬가지인 것이다."(34) 즉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참된 성품을 알게되면 천신(天神)과 같이 득도(得道)할 수 있으며, 천신(天神)의 기(氣)를 이어받아 있는 듯하면서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리고 양(陽)이 되기도 하고, 음(陰)이 되기도 하면서, 하나가 되어 영속(永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천부경에서 말하는 "본심본태양(本心本太陽) 앙명인중천지일(昻明人中天地一)"은 곧 사람에게는 그 근본(根本)이 육체(肉體)와 같은 물질(物質)이 아니라, 그 행동(行動)이자 작용(作用)의 근원(根源)인 마음(心)이며, 그 올바른 마음 속에서 신(神)의 마음인 중일(中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중일(中一)은 바로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에게 태양의 근본(根本)이 전해지고,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一終無終一

하나에서 끝나고 무(無)에서 끝나 다시 하나이다.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 인간은 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든 지구(地球) 상의 자연(自然) 세계(世界)를 통하여 사람이 사람임을 깨닫고, 더불어 그 기원(起源)과 원리(原理)를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모든 문명(文明)과 문화(文化)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 아무리 방대(尨大)하고 엄청난 것이라 하더라도, 단 하나로 이루어진 무한한 우주(宇宙) 속에서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 개인이 주변에 펼쳐져있는 공간 만을 생각한다면 그저 수평선(水平線)과 지평선(地平線)으로 나누어진 하늘과 땅의 두 세계가 보일 것이고, 우주(宇宙) 공간(空間)에 떠서 멀리서 지구를 볼 때는, 칠흑(漆黑)같이 어두운 암흑(暗黑) 속에서 영롱(玲瓏)하게 빛나는 아주 자그맣고 멋진 단 하나의 푸른 물방울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 인간은 그 조그만 하나의 덩어리 속에서 태어나서 죽으며, 삶의 의미(意味)와 함께 하느님(神)을 찾고, 영생(永生)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되어, 다시 만물(萬物)이 자리하고 있는 자연(自然)이자, 삼(三)이며, 동시에 일(一)의 세계(世界)와 합치게 된다.
삼일신고(三一神誥) 제5장 인물(人物)에서는 인간과 만물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사람과 만물(萬物)이 함께 삼진(三眞)을 받았는데, 오로지 사람들만이 길을 잃고 헤메어, 삼망(三妄)이 뿌리를 내렸다. 삼진(三眞)과 삼망(三妄)이 서로 대립(對立)하여 삼도(三途)를 만들었다. . . . 하나의 의미(意味)를 깨달아, 망(妄)을 진(眞)으로 바꾸면서 대신(大神)이 일어나고, 성(性)이 통하여 공(功)을 이룬다."(35) 여기서 삼진(三眞)과 삼망(三妄)은 성(性), 명(命), 정(精) 그리고 심(心), 기(氣), 신(身) 그리고 감(感), 식(息), 해(解 또는 촉觸)이 모두 선악(善惡)과 청탁(淸濁)과 후박(厚薄)으로 구분되면서 전체 18가지의 작은 길(途)로 나누어져 지는데, 그 잘된 쪽과 못된 쪽을 말한다. 이러한 삼도(三途)에서 헤메다가 하나의 의미(意味)를 깨달아,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고치면서 신(神)을 얻고 성품(性品)이 통하여 득도(得道)하게 된다고 한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업보(業報)와 해탈(解脫)과는 약간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즉 화신(化神, 化一)으로서, 인간도 신(神)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 화신(化神)의 과정을 대변설(大辯說)의 주석(註釋)에서는 좀더 논리적(論理的)으로 말하고 있다. "하나를 잡아 셋이 포함(執一含三)되는 이유는 하나의 기(氣)에 삼신(三神)이 있기 때문이며,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가는(會三歸一) 이유 또한 신(神)이 삼(三)이 되고 기(氣)가 일(一)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은 그 현상(現象, 體)이지만 역시 하나의 기(氣)이다. 하나의 기(氣) 안에는 삼신(三神)이 있으며, 지식(智識)의 원천(源泉)에도 삼신(三神)이 있다. 삼신(三神)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는 것도 하나의 기(氣)이며, 밖에 있는 것도 일(一)이자, 그 내용도 일(一)이며, 그 일(一)을 통제(統制)하는 하는 것이 삼신(三神)이다." (36) 모든 것이 삼신(三神)의 직접적인 통제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이루어지는 모든 일조차 삼신(三神)이 하는 일이어서, 삼신(三神)이 일기(一氣)가 되고 일기(一氣)가 삼신(三神)이 된다. 삼신(三神)은 원래 우주(宇宙)의 기초원소(基礎元素)가 가득 차있는, 그렇기에 비어있다고 할 수 있는 공간(空間)의 성격(性格)인 삼극(三極)을 형상화(形象化)시킨 것이다. 그것이 다시 지구(地球)에서 형상화된 것이 하늘(天一)이자, 땅(地一)이요, 만물(萬物)을 포함한 인간(人一)을 말하는 또 하나의 삼신(三神)인 것이다. 또한 지구상의 모든 만물은 삼(三)으로 대표하기도 한다.
땅은 양극(兩極)이자, 이극(二極)이며, 음양(陰陽)으로서 대표되고, 하늘은 삼극(三極)이자, 일극(一極)이며, 무극(無極)인 하나(全一)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를 형성하여 모든 것을 주관(主管)하는 전지전능(全知全能)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삼(三)이 신(神)이 되었을 때, 삼일(三一)이 되며, 인일(人一, 太一)이 되고, 중일(中一)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일기(一氣)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기(氣)의 자연적인 본성(本性)인 삼극(三極)에 의하여, 분화(分化)되었다가 합일(合一)을 이루면서 영원(永遠)으로 항진(航進)하게 된다. 하나(一)에 들어있는 수많은 세계 속의 만물(萬物)은 오로지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근본적(根本的)인 방법(方法)을 통하여 자신들의 근원(根源)이자 출발점이고, 탄생지(誕生地)인 하나를 향하여 접근할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로 압축(壓縮)하여 놓은 것이며, 또한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천부경(天符經)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나열(羅列)해놓은 숫자나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내용(內容)은 단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숫자가 필요하며, 따라서 언어(言語)가 필요하고, 그 외 부수적(附隨的)으로 따라가는 여러가지가 모두 필요하게 되며,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진 다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열(十)까지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요함이 극(極)에 달하면 움직이고, 움직임이 극(極)에 달하면 고요해진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적용할 수 있다. 끝으로 천부경에서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라는 마지막 구절(句節)을 보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에서 끝나지만,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기(氣)라는 무(無)의 존재(存在)에서 끝나는 것이며, 다시 그 하나에서 영원하게 시작과 끝이 나온다는 말이다. 마지막에 들어있는 하나(一)는 바로 81자를 총괄(總括)하여 대표(代表)하는 것이자, 마지막이 시작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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