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융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의식이 한 방향으로 강하게 작용하면 할수록 그 일방성으로 인해 의식의 흐름에서 배제된 내용이 무의식에 억압되어 의식의 인격과는 상반된 열등한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융은 '그림자'라고 불렀다

 

- 이부영교수님의 <노자와 융> 중에서

 

얼마전 읽은 심리학 책에서 에고란 부정적 성격의 감정과 생각 덩어리라고 표현하는 정의를 마주하고 참으로 옳다는 생각을 한참동안 했었다.

 

그간 에고가 무엇인가에 대한 숱한 정의를 마주해왔지만, 그 어떤 말도 늘 조금쯤은 모호했던 것 같다

해서 자아와 본성 혹은 자아와 참자아의 차이를 설명할때도 늘 어딘가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흐릿함속에 스스로도 답답했었는데, 부정적 성격의 생각과 감정덩어리가 에고라는 정의를 마주하고 보니, 왜 어째서 에고는 참자아를 자신의 맘대로 휘두른다고들 표현하는지가 한 순간에 다가오는 것 같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부영 교수님의 <노자와 융>을 읽으며 그림자 역시 의식화하지 못하고 무의식에 억눌린 자아의 또 다른 부분이라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에 적응하기위해 그 본성 중 일부만을 의식화하여 살아가고

나머지 일부는 무의식에 내재해놓는다.

 

이 경우, 의식화된 일부= 에고, 또한 에고의 또 다른 정의가 될 수 있겠고

에니어그램에서 바로 "고착원인"이라고 부르는 뿌리성격이 될 수 있겠다.

 

이렇듯 한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거늘

어떻게 한 사람을 한가지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즉, 우리 안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고 발견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숨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억압된 그림자를 억지로 계속해서 억압하면 의식과 무의식의 대극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여러 장해가 생긴다고 한다. 여러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2차 성징기, 중년의 위기에서 그 대극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어떻해야 무의식 세계에 억압된 열등기능을 수면 위로 끄집어내는 의식화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에니어그램이던 분석심리학이던 결국에는 만나게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월긴으의 활동을 잠시 늦추어 그곳에 흐르던 리비도 (에너지)를 열등기능을 발전시키는데 돌리는 것, 즉 '남는 것을 덜어 모자라는 것을 보태는 것'이다. -----------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우월기능이 다른 어떤 기능보다 익숙하고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것만을 쓰고자 한다. ... 다시 말해 평범한 모든 사람의 성향이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마치 모자라는 곳에서 더욱 남는 것을 보태는 일, 즉 열등기능에 있는 부족한 에너지까지 빼앗아 우월기능에 제공하는 어리석음과 같고 그리되면 열등기능은 더욱 열등해지고 극에 달한 무의식의 열등기능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의식의 우월기능에 대해 과보상하는 나머지 우월기능의 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주거나 그 기능을 완전히 뒤엎어버려 열등기능으로 대치해버린다. ... 즉 대극의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 이 부영 교수님의 <노자와 융> 중에서

 

그러니까 에니어그램으로 설명하자면, 사고기능이 발달한 사람이 사고기능만 과하게 쓰거나 감성이 발달한 사람이 감성만 과하게 쓰면, 결국 그 사람의 성격은 한쪽으로만 과도하게 발달하여 통합된 인격을 갖추기 어려운 것은 물론, 언젠가는 너무 억눌린 다른 성격 유형이 대반란을 일으키는 때가 온다는 말이겠다. 흔히들 주변에서 중년에 우울증이 급등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언젠가부터 "전문가 신드롬"에 빠져서 이것을 인격적인 부분에까지 확대하지 않았나 싶다.

즉 기술적으로 혹은 테크니컬하게 전문가가 되는 것을, 마치 인격적으로도 사고만 발달한 유형을 너무 과하게 추구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와중에도 감성이나 직관만 발달한 유형도 많지만 말이다).

 

목표지향적인 성취주의적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까지 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우리들.

살면서 한번쯤 걸려넘어지게되는 2차 성장기 혹은 중년의 위기에는 꼭 한번 내 안에 억압된 또 다른 내가 어떤 모습인지 살펴봐주고 어루만져 주어야할 것 같다.

 

융과 도덕경에 의하면

바로 거기 그곳에

자기본성적 삶으로 가는 비밀의 열쇠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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