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위기로 내모는 `의사결정 실패` 5단계
차세대 전투기사업·세제개편으로 본 한국의 의사결정 위기
기사입력 2013.10.04 14:09:20 | 최종수정 2013.10.04 16: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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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위사업청은 지난 9월 24일 차기 전투기(F-X)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2007년 F-X 도입을 결정한 지 무려 6년이 지나서였다. 입찰 결과 8조3000억원의 예산 상한을 맞춘 기종은 F-X라고 부르기 힘든 F-15SE뿐이었다. 2011년 국회마저 1조8000억원이 부족하다고 했던 예산 상한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8일 연소득 3450만원 이상 직장인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내용의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7개월에 걸친 고민의 산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산층 증세라는 여론의 직격탄을 맞았다. 발표 나흘 만에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 사회는 의사 결정의 위기를 겪고 있다. F-X사업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이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웅진그룹은 몸집을 무리하게 키우다 공중분해됐다. STX의 위기는 중국 다롄조선소에 대한 무리한 투자 결정 탓이 크다. 

전문가들은 의사 결정이 난맥상을 빚는 까닭에 대해 "한국 사회 특유의 엄격한 위계질서 때문에 나쁜 소식ㆍ정보는 조직 내에 흐르지 않는다는 점, 이 때문에 리더들이 정보의 진공 상태인 최고경영자(CEO) 병에 빠지는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 1단계 : 보스 불편하게 하는 정보는 차단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 추락해 225명이 사망했다. 경영 구루 맬컴 글래드웰은 "기장이 줄곧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부기장이 눈치챘지만 명시적으로 잘못을 지적하지 못한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위계질서 탓에 상사에게 나쁜 정보를 알리지 못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사고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괌 참사 증후군`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보스를 불편하게 할 만한 `나쁜 정보ㆍ소식`은 입에 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애써 무시한다. 그 결과 조직에는 `좋은 소식`만 과잉으로 흐르고 `나쁜 소식`은 흐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제 개편안이 중산층 증세라는 부분은 사전 당정협의 과정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F-15SE는 스텔스 기능이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마저 애써 무시됐다. 

◆ 2단계 : 눈과 귀 막힌 CEO 판단력 떨어져 

조직에 나쁜 정보가 흐르지 않으면 리더는 듣기 좋은 정보만 접하게 된다. 결국 정보의 진공 상태에 빠진다. 이런 리더를 꼬집어 대니얼 골먼 박사는 "CEO병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잭 웰치 전 GE CEO는 이 병을 경계한 대표적인 예다. 그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CEO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CEO병과 무관하지 않다. 세제 개편안 발표 나흘 만에 "서민을 위한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고 밝혔다는 게 증거다. 이를 근거로 한 컨설팅 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세제 개편안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정보의 진공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며 "CEO병의 증상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 3단계 : 문제는 외면…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간이 흐르면서 리더와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각에 부합되는 증거만 수집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를 일컬어 프랑수아 만조니 인시아드 교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편향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제 개편안 발표 후에 경제팀이 보인 태도는 확증 편향에 가깝다. 여당의 수정 요구에 대해 현오석 경제부총리 등은 "뭐가 문제냐"고 항변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거위 깃털을 고통 없이 뽑는 것과 같은 창의적인 세제 개편안"이라고 말했다. 세제 개편안의 단점은 애써 무시하고 장점만 보려는 이 같은 태도는 확증 편향의 증상이다. 방위사업청 역시 F-15SE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적극 거론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4단계 : 우선 순위 바꾸며 자기합리화 

리더와 조직은 확증 편향에 빠져들면서 `우리가 옳다`는 확신을 굳히지만 외부 환경은 정반대로 흐른다. 뒤늦게 외부 반발에 당황하는 순간이 온다. 의사 결정을 정당화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보이는 증상이 우선순위의 혼란이다. 의사 결정의 우선순위를 바꿔 의사 결정 자체를 합리화하려는 시도다. 

군은 F-X사업 시작 당시에는 목표를 `스텔스기 확보`라고 밝혔다. 그러나 F-15SE의 스텔스 기능이 문제가 되자 `전력 공백 최소화`로 우선순위를 바꾸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F-15SE 도입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F-15SE가 부결될 때는 `5세대 전투기 확보`를 우선순위로 내세웠다. 

◆ 5단계 : 판단 실수와 오류의 반복ㆍ악순환 

의사 결정의 실패는 반복된다.
 증세 논란은 한국 사회에 잠재된 폭탄이기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F-X사업의 기종 선정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폴 J H 슈메이커 맥기술혁신센터 리서치 디렉터는 "(의사 결정의 반복적인 실패를 피하려면) 인간은 언제나 실수와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실수로부터 통찰과 배움을 얻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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