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조립식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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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대한 당신의 통념을 무너뜨릴 신개념 주택 건설 시스템
  • Story by RUPERT GOODWiNS
  • 입력시간 : 2014-01-17 10:43:46
    수정시간 : 2014-01-24 10: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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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키하우스(WikiHouse)’는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주택 설계 자료실을 운용한다. 이곳에서 다운로드 받은 설계도면에 따라 CNC 밀링머신으로 합판을 가공해 조립하면 누구나 손쉽게 내 집을 직접 지을 수 있다.


영국 런던 중부의 어느 춥고 흐린 날. 필자가 건축가 알라스테어 파르빈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빈티지 커피메이커 퍼컬레이터(percolator)를 분해해 사무실 탁자 위에 늘어놓고 한창 청소 중이었다. 위키하우스(WikiHouse)의 공동설립자인 파르빈은 현재 오픈소스 건축시스템을 통해 건물 건축·설계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다.

끙끙거리며 퍼컬레이터를 재조립해 커피를 내린 그는 자신의 해커스페이스를 소개시켜줬다. 책상과 소파,
게시판 등이 있었고 한쪽의 넓은 공간에는 합판으로 만든 주택 골조도 보였다. 이곳은 그에게 ‘사용자가 자신에게 맞는 집을 자기 생각대로 건설하도록 한다’라는 위키하우스의 이념을 실현시킬 메카다.

‘제로제로(00)’라는 건축설계 모임의 회원인 파르빈은 지난 2011년 동료 건축가인 닉 아이에로디아코누와 의기투합해 위키하우스를 설립했다. 사실상 이는 자신들이 속해 있는 기존 건축업계에 반기를 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실제로 파르빈은 2013년 TED 강연에서 건축업이 오직 부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변모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위키하우스의 목표는 교육수준이나 경제력, 전문지식에 상관없이 누구나 주택을 설계·건설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홈페이지(wikihouse.cc)에 설계도면과 세부적인 건설방법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자료실을 개설·운영하고 있다. 누구든 도면을 다운로드 받고, 자신에게 맞춰 변경하고, 출력할 수 있다.

“위키하우스는 일종의 공개 생산 시스템이에요. 트림블의 ‘스케치업(SketchUp)’ 같은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만의 설계 도면을 만들 수도, 위키하우스의 도면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두 방식을 절충할 수도 있죠. 이 도면을 CNC 머신에 입력, 합판 등을 재단한 뒤 조립을 하면 되요. 마치 이케아의 조립식 DIY 가구인 ‘플랫 팩(flat pack)’과 동일한 방식으로 주택을 짓는 겁니다.”

플랫 팩처럼 위키하우스의 주택도 각 자재들이 정확히 맞물리기 때문에 건설과정은 간단하다. 상당수 자재들이 CNC 머신이 합판을 가공해 만든 나무못이나 쐐기로 결합되는 만큼 공구도 많이 필요치 않으며, 금속부품의 숫자도 적다. 이렇게 완성된 골조를 단열재를 넣은 내외장재로 마감하면 집이 완성된다.

이미 영국 요크셔 프라이데이소프 지역에 마을회관 겸 휴게실이 이 방식으로 완공됐으며, 프로토타입 위키하우스들도 다수 존재한다.

“아직 주거 목적의 위키하우스는 건설된 바 없지만 도면들은 여러 개 등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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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이래 위키하우스의 유저들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덕분에 작은 프로젝트였던 위키하우스가 이젠 건축에 관심 있는 개인들과 팀들의 글로벌 커뮤
니티로
성장했다. 수천명의 회원들은 서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설계를 실험하며, 문제점들을 찾아 개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와는 별도로 파르빈은 최근 위키하우스의 한계도 절감하고 있다. 기존 건축가나 건축업체의 핵심적 역할만큼은 대체가 불가하다는 부분이 그것이다. 그 역할이란 바로 복잡한 법규에 맞춘 허가 획득, 주택의 안전성 확보, 단열·배관·배선 등에 필요한 자재의 조달을 말한다. 이에 그는 향후 사이트를 확장해 사용자의 요구와 건설 위치에 최적화된 맞춤형 설계를 제공
함으로써 합법성과 안전성, 자재 조달 편의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결국 저희는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합니다. 주택이 들어설 지자체의 건축 관련 조례, 기후, 전력·상수도 인프라, 합판이 온도와 습도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까지 말이에요.”

파르빈은 2001년 등장한 사용자 참여형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사전 업계에 미친 엄청난 파장을 지켜봤다. 오늘날 그는 인터넷에 의한 그 같은 진화가 건축계에도 일어나길 희망한다. 그리고 건축 아이디어를 신속히 개선·검증할 수 있는 위키하우스가 그런 변화의 주춧돌이자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당연히 이는 기존 건축가나 건설사들의 입지를 뒤흔들 수 있다. 완벽하게 다듬어져 수천 번 시공된 설계·건설기법이 존재한다면 누구도 그들에게 돈을 내고 설계와 시공을 맡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르빈은 건축기술의 미래를 인지하고, 서슴없이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가 태블릿 PC를 집어 들자 파르빈은 ‘클로드 글라스(Claude glass)’ 얘기를 꺼냈다. 이는 18세기에 화가들이 주변풍경의 색상과 대비를 선명히 보기 위해 사용했던 작은 검은색 거울인데 클로드 글라스가 개발되면서 풍경화가 대중화됐다는 설명이었다.

“기술은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고차원적인 것을 지향하는 게 아닙니다. 기술적 문턱을 낮춰서 평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술 진화의 진정한 가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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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한옥의 지혜_ 위키하우스 사무실에 설치돼 있는 휴게소 건물의 골조. 각 자재들은 대부분 나무 쐐기와 나무못으로 조립되는데 이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전통 한옥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DIY MY HOUSE
다음의 5단계를 따라하면 누구나 내 집을 손쉽게 설계·건설할 수 있다.

1 3D
모델링 프로그램 스케치업(sketchup.co.kr)의 무료버전을 설치한 뒤 위키하우스 플러그인(wikihouse.cc/guide/download)을 다운로드 받는다.
2 위키하우스 자료실에서 원하는 주택 설계를 선택한 뒤 스케치업에서 ‘make this house’를 클릭, 자재를 재단할 파일을 생성한다.
3 생성된 파일을 CNC 밀링 머신에 입력해 합판 등의 판재로 빔, 패널 등의 부품을 만든다.(CNC 머신이 없다면 관련업체에 의뢰한다.)
4 부품들을 이어 맞춘 뒤 쐐기와 나무못으로 연결한다. 이후 골조를 세워서 벽과
지붕, 바닥재를 나사로 고정한다.
5 배관과 전기 배선를 연결하고 단열재, 창문, 외장을 설치한다. 그리고 완성된 주택을 지인들에게 자랑한다.

크라우드 소싱 (crowd sourcing) 제품이나 서비스의 개발 과정에 다수의 일반 대중이 참여토록 하는 방식.
해커스페이스 (hackerspace) 개인발병가나 화이트
해커들이 각자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동 작업 공간.
TED 기술(Technology)·오락(Entertainment)·디자인(Design) 분야의 유명인사들이 진행하는 세계적인 첨단기술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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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하우스의 공동설립자이자 건축가인 알라스테어 파르빈은 현재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주택 설계와 건축기법을 개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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