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6일 오전 조난신고 새로운 펙트. [3]

박미진 (purem****)

주소복사 조회 617 14.04.30 00:20 신고신고

최근 뉴스타파 등이 공개한 펙트로 교신내용상 드러난 시간은 정부측이 주장하는 8시 55분과 많게는 50분가까이 차이가 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 KBS2 와 어부의 증언 등의 펙트로 드러난 것은 모두 조난신고가 7시 20분 이전임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였다. 아래 새로 들어온 에비던스를 정리한다.


더우기 놀라운 사실은 박근혜와 청와대는 16일 오후 5시까지도 침몰한 세월호 선내 300명이상이 갇혀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 참조 :

2707834 세월호 조난신고 시간은 16일 새벽이였다는 새로운 펙트확인. [73] 박미진 990 5 27261 14.04.27
2707921 세월호 조난신고 시간. 꼼꼼히 다시 볼 진모님의 분석글 리뷰. [10] 박미진 107 0 2130 14.04.27
2708488 세월호 새벽 조난신고 또 다른 펙트확인. [32] 박미진 357 5 5679 14.04.27


■ 박근혜와 청와대가 16일 오후 5시까지 세월호에 대한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증언. 청와대를 살리기 위한 내외교응자의 연막일 수 있지만 활자화된 펙트 검토의 가치있다 평가한다.


<출처 : 동아일보 >



 


■ 단원고 상황게시판 조난신고 해경으로부터 8시10분 받고 허둥지둥함. 이 때 학부모에게 연락하고 또는 아이들에게 탈출을 준비시켰다면 많은 아이들이 구조됐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 조작됐을 것이라고 의심받는 교신 내용조차 정부 발표보다 23분 33분 앞서있다. 뉴스타파보도 참조.




 


 


■ 앞뒤 안맞는 해경의 선장 구조 시점 [매경기사]

[진도 여객선 참사] "선장 위험하니 9시께 탈출"…신고 접수 2~3분 뒤?

기사입력 2014-04-17 08:30최종수정 2014-04-17 08:31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1755760&date=20140417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진실이다.


아이들을 충분히 구조 할 수 있던 시간에 해경배를 띄워 가장 먼저 구조한 항해사와 조타실 직원 선장 등 승무원 5명이라고 전하고 있다. 대체 병풍도 앞바다에서 아이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었던 120분 그 이상의 시간 동안 관계당국과 청해진과 세월호 승무원은 무엇을 했는가?


항간의 떠도는 말처럼 해난구조드라마 쓰려고 하다가 당한 것인가?

살아남은 자는 진실을 토설하라.



▶◀ 애도의 행렬이 "분노의 행렬" 입니다!!!!!!!!!!! [3]

모짜르트맨 (inyan****)

주소복사 조회 94 14.04.29 19:50 신고신고

내리는 빗속에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조문행렬은 이어졌습니다.

 

정부당국자와 정치인 여러분,저 줄을 똑똑히 보시기 바랍니다.

 

겉모습은 애도의 행렬이지만
줄 선 이들 가슴 속에는 "분노의 행렬"입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몇시간씩 기다려야하는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 [영상] 서울광장 합동분향소, 침통한 시민들 줄이은 조문행렬

 

 

 

▶◀ [영상] "정홍원 조화 저리 치워"

 

 

▶◀7~9시사이~! 언론사 취재요청합니다. [8]

WHY (iris****)

주소복사 조회 1173 14.04.29 16:19 신고신고

7~9시사이가 아직도 밝혀지지않고 어느 언론사도 접근하지 못하는거 같네요. JTBC도 의혹제가만 하고 확실한 문제제기는 못하는거같아요. 왜일까요? 7~9시는 취재자제 또는 함구령을 지시하지 않았을까요?? 네티즌들이라도 이부분을 계속 이슈화해야 움직이는 언론들이 생길듯요.

 

 

 

 


조선티비 새벽조산신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05247

문화일보 시간변경? 7:32->9:28??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04985&pageIndex=1

MBN 7시8분 첫교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4725492

미디어오늘 승선원 전모씨증언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187

연합뉴스 인근주민 목격담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05991

KBS 굿모닝대한민국 2부 7시20분 자막편집

http://cafe.daum.net/push21/QTkS/3?q=7%BD%C320%BA%D0

굿모닝대한민국과 동시간대 KBS1뉴스광장에 남은 특보흔적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711794&bbsId=D115&searchKey=daumname&sortKey=depth&searchValue=%EC%AD%88%EA%B5%AC%EB%A6%AC&y=0&x=0&pageIndex=1

미니스커트 입은 조문객이 "꼴불견"이 아니에요.

2014/04/28 11:21 솔내음




안산 단원고 합동분향소에서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가 촬영한 조문객들의 모습이에요.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시민들은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긴 줄을 마다하지 않았다.” 는 설명이 붙어 있네요.

미안해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다들 그렇게 분향소를 찾나 봐요.

분향소를 찾는 데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어요.
어른들 말을 따르다 죽은 착한 아이들이 이제는 좋은 곳에 가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 저마다 꽃을 바치고 향을 피웁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너졌던 가슴에 그래도 한 자락 위로가 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연대감이 아직 우리 맘에 남아 있다는 걸 확인 할 수 있으니까요.

안산 분향소에는 <연합뉴스> 기자도 있었나 봐요.
<연합뉴스> 특별취재팀 이름으로 나온 기사 제목이 “<세월호참사> 분향소에 미니스커트슬리퍼 등 '꼴불견'…” 입니다.

내용을 조금 볼게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짧은 청바지를 입은 채 분향소로 들어가는 줄에 서 있었다. 분향을 마치고 나오는 두 여성은 속살이 비치는 베이지색 망사 원피스와 무릎 한뼘 정도 위까지 오는 길이의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동영상을 다시 봅니다.
이제서야 분홍색 우산도 보이고, 빨간색 티셔츠도 보이고, 청바지도 보이네요.
군복을 입은 군인도 있고, 짧은 바지의 여성도 있습니다.

전 처음에 동영상을 보면서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려는 저들의 마음만 보였는데, 역시 정부의 예산을 지원 받아 운영하는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 소속 기자들의 눈은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네요.

비 내리는 분향소를 찾은 그 많은 조문객들 중에서 미니스커트, 망사원피스, 야구모자와 선글라스, 슬리퍼등을 용케도 잘 찾아 냈네요.

시민경찰”(이건 정체가 뭘까요?)의 말을 빌어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조금만 더 복장에 신경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기사를 마무리 했네요.

제가 만약 유족이라면 망사 원피스 안의 속살이 아니라 그렇게 입고도 분향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보고 고마워 했을 것 같아요.

<
연합뉴스> 기자들은 남들이 못 보는 것까지 보는 그 특별한 눈을 다른 곳에 썼어야 했어요.

예를 들자면 “'물살 거세지기 전에…' 사상 최대 규모 수색 총력같은 기사를 쓸 때 해경이나 대책본부에서 불러 주는 대로 쓰지 말고, 실제 상황을 확인하고 썼다면 이상호 기자로부터 그런 험한 욕설을 듣지는 않았을 테지요.

“연합뉴스 개XX, 그게 기사야? 넌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이상호 기자는 해당 발언을 사과 했지만, 전 이 말에 상당히 공감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어요.

사상 최대 규모 수색 총력기사 때문이 아니라, “속살이 비치는 베이지색 망사 원피스기사 때문이기도 해요.

<연합뉴스>에는 국가기간통신사라고 해서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해 줘요.
요즘 <연합뉴스>의 기사들을 보면서 그 세금이 무지 아깝다는 생각, 저만 하는 건 아닐 거에요.

꼴불견은 미니스커트 입은 조문객이 아니라, 막돼먹은 기사 쏟아 내는 <연합뉴스>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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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추모 분위기가 불편한가

등록 : 2014.04.28 21:58수정 : 2014.04.29 11:40

28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올림픽기념관 체육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임시 분향소’를 찾은 한 수녀가 헌화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분향소는 28일 밤 12시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는다. 경기도 합동대책본부와 안산시는 29일 오전 10시부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공식 합동분향소’를 마련해 단원고 학생과 교사뿐 아니라 일반인 희생자의 위패도 함께 모셔 조문을 받는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분향소 설치 제한·축소 의혹

안행부, 시·군·구는 제외시키고
광역시·도 청사 실내로 한정
역 광장 두고 회의실에 만들기도
천안함땐 “왕래 잦은 곳에” 지시

정부가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국민들의 추모 움직임을 애써 축소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3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전국에 합동분향소 설치를 지시했지만 안전행정부는 사흘 동안 꾸물거렸고, 뒤늦게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공문에는 분향소 설치 장소를 ‘실내’로 한정하고 기초자치단체(시·군·구)는 분향소 설치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4년전 천안함 사고 때 정부는 분향소 설치와 관련해 시민 왕래가 잦은 곳에 설치하고 시·군·구는 자율적으로 설치를 결정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28일 안전행정부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 보낸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 지역단위 합동분향소 설치 협조’ 공문을 보면, 분향소 설치 장소는 ‘시·도 청사 원칙(불가피시 인근 공공기관 활용). 조용한 실내공간에 설치’라고 정해줬다. 설치 지역도 ‘17개 시·도청 소재지별 각 1개소(시·군·구는 제외)’로 제한했다. 이 공문은 지난 26일 시행됐다.

특히 이 공문에는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실내공간’을 분향소 장소로 언급한 뒤에도 ‘지역 경찰과 긴밀히 협조해 분향소 질서를 유지하라’는 내용을 담아 ‘질서’를 강조했다.

이와 달리 천안함 사고 때인 2010년 4월22일 당시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가 지자체에 보낸 공문을 보면, ‘지역주민 추모 참여 편의를 위해 시민 왕래가 잦은 곳에 지방자치단체 자체 판단해 설치하라’고 밝혀, 분향소 설치 장소를 실내로 한정하지 않았다. 또한 ‘분향소 설치는 광역 시·도 각 1개소씩 하되 시·군·구는 자율적으로 결정하라’고 했다. 시·군·구 34곳이 천안함 장병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운영했다.

이에 경기도는 수원시 팔달구 도청 신관 4층 제1회의실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30분 간격으로 수원역~경기도청 셔틀버스를 운행중이나, 공무원들조차 장소 선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공무원은 “시민들이 여기까지 왜 오겠냐. 보여주기식”이라고 비판했다. 천안함 사고 당시 경기도는 사람들이 붐비는 수원역 광장에 분향소를 차렸다.

또한 천안함 사고 당시 부산역 광장에 분향소를 차렸던 부산시는 청사 1층 국제교류전시관 앞 복도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대구시도 천안함 사고 때는 하루 유동인구가 60만명인 시내 중심부 2·28 기념 중앙공원에 분향소를 차렸으나, 이번에는 남서쪽 변두리인 두류공원(달서구)에 분향소를 만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침몰사고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영환 의원(안산 상록을)은 “무능한 정부의 늑장 구조로 인한 참사에 대한 국민 분노가 커지자, 정부가 분향소를 축소해 추모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옹졸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행부 관계자는 “시·도청사는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이 있어 실내 설치를 지시한 것이다. 또한 천안함 때는 국방부의 요청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산/김기성 김일우 홍용덕 기자, 음성원 기자 player009@hani.co.kr.

[세월호 참사] 147m 심해작전 했던 해군, 세월호엔 무기력…왜?

  • 2014-04-29 05:00

  • 정부 "선체 자세 바꾸자"…사실상 '인양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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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작전 기네스기록 보유한 해군, 세월호엔 이렇게 존재감 없다니...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에 유속이 빨라지며 수색작업이 잠시 중단되고 있다. 황진환기자
재작년 12월 12일 오전 9시58분 북한 장거리 로켓 은하3호의 추진체가 변산반도 서쪽 138km 점에 떨어졌다.

해군 SSU(해난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아침 8시. 대원들은 청해진함에 구비된 이송용 캡슐(PTC)을 타고 수심 88m 해저로 내려가 수색에 들어갔다.

PTC는 이번 세월호 사고 해역에 투입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은 ‘다이빙벨’보다 한참 앞선 장비다.

SSU가 로켓 잔해를 청해진 갑판에 올리는데 성공한 것은 인양작업에 돌입한지 8시간 반이 지난 뒤였다.

해군은 이와 별도로 군산 서방 160㎞ 해상에 떨어진 산화제통과 연료통, 엔진잔해 등 1단 추진체 잔해 14점을 7차례의 잠수를 통해 모두 인양했다.

이 작전에는 헬륨과 산소로만 구성된(질소가 포함되지 않은) 혼합기체를 활용한 심해잡수 기법이 활용됐다.

해군은 당시 1회 잠수에 평균 2점의 잔해를 건져 올릴 정도로 인양 작업은 효율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혹한의 추위(영하 2~5℃)와 강한 조류(시속 0.9~1.3㎞), 짧은 시정(0.5~1.0m) 등 악조건 속에서도 부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은 성공적인 작전이었다고 자평했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전남 진도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 수색작업을 위해 정박한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의 장비가 정리돼 있다. 황진환기자
청해진 함은 특히 취역한 이듬해인 1999년에는 남해에서 침몰한 북한 반잠수정을 인양하기도 했다.

당시는 고압챔버를 이용해 압력을 조정한 이후 최대 300m까지 잠수가 가능한 포화잠수 기법이 동원됐다.

그 결과 147m 심해에 묻힌 잠수정이 인양됐다. 147m의 심해작전은 미 해군이 1990년대 초에 세웠던 수심 98m 선박 인양 기록을 깨트리고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당시 작전에는 수중무인탐사기(ROV)와 심해구조잠수정(DSRV) 등도 활용됐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같은 대한민국 해군의 심해 구조 실력은 ▲1983년 다대포 간첩선 인양(수심 63m) ▲1993년 서해 훼리호 인양(수심 15m) ▲1998년 동해 적 잠수정 나포 및 인양(수심 40m) 등 풍부한 실전경험을 통해 축적된 결과였다.

이 밖에도 해군 SSU의 작전은 ▲2002년 참수리 357호 인양(수심 27m) ▲2003년 합천호 추락헬기 인양(수심 30m) 작전 등에서도 빛을 발했다.

다양한 실전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와 실력으로 무장돼 살아있는 전설이 된 SSU가 왜 이번 세월호 참사 때에는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해군은 우선 TPC의 경우 사고 해역의 강한 조류 때문에 투입을 못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왜 물살이 약한 소조기 때는 투입을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있다.

해군의 소극적인 활동과 관련해서는 세월호 수색 작전의 지휘권을 해경이 가지고 있는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1일째인 26일 오후 전남 진도 관매도 인근 사고 해역 수색작업을 위해 정박한 언딘 리베로 바지선에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의 장비가 정리돼 있다. 황진환기자
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해경이 수색현장의 지휘를 맡고 해군은 이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해군이 지원을 넘어 해경이 행사하고 있는 지휘권을 가져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세월호 선체 수색 외에도 다양한 수색임무를 해경이 모두 관장하고 있는데 지금 와서 이를 해군이 가져오게 되면 그동안에 모인 정보들이 모두 단절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직 SSU 대원은 "해당지역이 재난지역으로 선포됐으면 준 전시상황 아니냐"며 "국민의 군대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조 전문가는 "굳이 1군 선수를 놔두고 2군 선수를 앞세워 작전을 벌이고 있다"며 "참으로 한심한 상황이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청와대나 총리실 같은 윗선에서 컨트롤을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결과"라며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베테랑 UDT 동지회까지 "구조 참여 요청 묵살당했다"

  • "이름 없는 내 아들, 천당에서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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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아흐레째인 24일 오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현장에서 해군과 해양경찰, 민간 잠수사 등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세월호 실종자 구조 작업을 둘러싸고 해경의 특정 민간업체 밀어주기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UDT(해군 특수전전단) 동지회까지 해경을 강도높게 성토하고 나섰다.

UDT 동지회는 24일 '세월호 침몰 관련 해경의 관료적 사고와 안일한 태도를 고발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자 마자 팽목항 현장을 찾았지만 해경의 원활하지 못한 업무 처리로 인해 전문 잠수사들이 물에 한번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됐다"고 밝혔다.

동호회 수준을 뛰어 넘어 자타가 공인하는 수중 구조작업의 최고 베테랑들인 UDT 출신 민간 잠수사들까지 초기 구조 작업에서 배제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UDT 동지회는 "사고 당일 해경의 거부로 구조작업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가 지난 금요일(18일)에 다시 동지회 20명이 도착해 구조작업을 공식 요청했으나 묵살됐다"고 말했다.

동지회는 "만약 처음부터 UDT 요원들이 들어갔다면 써치 라인을 한개가 아니라 여러개 설치했을 것이며 초기에 유리창을 깨서 진로를 개척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UDT 동지회가 격분하는 이유는 사고 초기 해경측에 UDT 출신의 전문다이버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해경의 안일하고 관료적인자세로 묵살되어 혹여 구할 수 있는 어린 생명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UDT 동지회는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군, 경 구조요원들은 UDT 동지회의 후배들이며 이들 또한 전역한 UDT 동지회 요원들에 의해 교육을 받았다"며 "일부는 지난 93년 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시 참여했던 요원들로 수중구조 작업에 최고 전문가들"이라고 덧붙였다.

■ UDT 동지회 보도자료 전문

먼저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UDT 동지회는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하고 이들의 신속한 구조를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팽목항 현장을 찾았지만 UDT동지회는 해경의 원활하지 못한 업무 처리로 인해 전문 잠수사들이 물에 한 번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UDT 동지회는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날(17일) UDT 동지회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팽목항 긴급 지원을 요청하며 팽목항에 집결 요청을 하고 선발대로 UDT 부회장 김정환과 김동식(37기) 등을 사고 지점인 팽목항 현장에 파견했다. 이후 엄익창(19기), 박문호(21기), 김대권(37기)도 현장에 도착 했으며 같은 날 개인 민간 잠수부의 잠수장비를 실은 민간바지선 4척 등도 팽목항에 도착했지만 해경의 거부로 구조작업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추후 해경 지휘부의 요청으로 다시 (월요일)투입되었다 한다.)

금요일 UDT 동지회 20명이 도착해 실질적 구조작업에 대해 미팅을 가졌으며 구조작업 준비에 들어갔다. UDT 동지회는 지난 19일 팽목항 해경 지휘소에 UDT 요원들이 표면공기 공급방식으로 잠수를 할 수 있게 필요한 사항들을 협조해 달라고 공식으로 요청한다.

요청사항은 UDT 동지회가 준비한 표면공기 공급방식의 잠수를 할 수 있게 만든 길이 40m 폭 17m 높이 3m 수용인원 40~50명 규모의 잠수사들이 숙식을 할 수 있는 전용 바지선과 민간잠수 작업선 4척을 사고해역에 진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빠른 구조작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해경은 기다려달라 연락주겠다 하며 시간을 끌며 다음 날인 20일(일) 오전까지 우리측 요청에 응하지 않아 구조작업에 참여한 UDT 동지회 전체회의(권경락 중앙회장 주관)를 열어 재요청 및 요청이 묵살되면 항의하기로 하고 그래도 안되면 철수하기로 결론이 났다. 이에 UDT 동지회는 즉각적인 투입을 재요청했으나 해경은 민간 잠수부 신청을 받는 곳에서(정동남) 신청을 하고 대기하라며 또다시 묵살하었다.

이에 UDT 동지회는 레저를 즐기는 민간 다이버와 같은 취급을 하지 말고 즉각적인 투입을 할 수 있게 거세게 항의했지만 또 다시 묵살되어 개별적 철수를 하게 되었다.

우리 UDT 동지회가 격분하는 이유는 사고 초기 해경측에 UDT 출신의 전문다이버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 해경의 안일하고 관료적인 자세로 묵살되어 혹여 구할 수 있는 어린 생명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받게 하는 것에 대해 격분하는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UDT 요원들이 들어갔다면 써치 라인을 한 개가 아닌 다수 설치 했었을 것이며 초기 유리창을 깨서 진로를 개척했을 것이다. 참고로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군, 경 구조요원들은 UDT 동지회의 후배들이며 이들 또한 전역한 UDT 동지회 요원들에 의해 교육을 받았다. 이번 세월호 여객선 구조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UDT 출신이며 이중 80%는 수중 공사, 잠수 관련 일을 하는 베테랑들이다. 또한 일부는 지난 93년 위도 해상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시 참여했던 요원들로 수중구조 작업에 최고 전문가라 할 수 있다.

50분간 경비정 1척으로만 구조…선체 진입도 안해

등록 : 2014.04.28 20:32수정 : 2014.04.2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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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해경 대처 문제점

최초 출동한 경비정 ‘123정’
현장파악 못해 소극적 구조만
상황실은 상황전달·지시 없어
특공대, 40분이나 대기하다 출동

해경이 세월호 침몰 당시 승무원들의 탈출 장면을 담은 10분 분량의 동영상을 28일 공개했다. 영상은 인근 해역에서 경비 업무를 하다 처음으로 현장에 달려온 해경 123정의 승조원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촬영한 것으로, 16일 오전 9시28분58초부터 11시17분59초까지 사이사이 찍은 9분45초 분량의 구조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고 발생 13일 만에 해경이 뒤늦게 공개한 동영상에는 구조대가 일찌감치 선체 진입을 포기한 채 주변만 맴돌며 소극적인 구조 활동에 그치고 있는 아쉽고 안타까운 장면들이 담겨 있다.

■ 상황 파악 제대로 못한 채 도착 사고 해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배는 목포해경 소속인 123정(100t급)이다. 16일 오전 8시58분 침몰 신고를 접수한 목포해경은 3분 뒤 목포항공대에 헬기 이륙을 지시하고 완도 인근 해역에서 순찰 중이던 완도해경의 P-57함과 278함의 이동을 명령했다. 목포해경의 123정과 1508함, 3009함은 오전 9시7분 이동을 시작했다. 당시 사고 해역으로부터 18㎞ 거리에서 순찰 중이던 123정이 9시35분께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123정은 출동 과정에서 세월호와 교신을 하지 못했다.

123정을 지휘한 김경일 정장은 “9시부터 1분간 세월호에 교신을 시도했는데 답이 없어 교신을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세월호는 초단파무선통신(VHF) 채널 12번을 사용해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신고를 했다. 제주 관제센터는 9시6분께 진도 관제센터에 연결했고, 진도 관제센터는 9시7분에 비상 채널인 16번을 사용해 세월호와 교신했다. 출동 중이던 123정이 첫 교신에 실패했더라도 이후 16번 채널을 사용했다면 세월호와 진도 관제센터가 교신하는 내용을 듣고 미리 현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123정이 세월호와 직접 교신하지 못했다면 해경 상황실이 일찍 상황을 파악해 123정에 알렸어야 했다. 김 정장은 “상황실에서 승객이 400~500명 정도이고, 선체가 좌측으로 40~50도 정도 기울고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후 김 정장은 “(승선)인원이 많기 때문에 인근 어선을 총동원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선체 내 수색 등 초동 대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나 관련 정보는 갖고 있지 못했다. 사고 초기 40여분간 목포해경-진도 관제센터-경비정 123정 사이에 정보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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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분 동안 100t급 달랑 하나? 해경 동영상을 보면, 오전 9시34분에 멀리 세월호의 선체가 보인다. 이때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50~60도 기울어진 상태였다. 세월호 오른편 선미 쪽엔 해경 헬기 B511호가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장면이 보인다.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이 반복된 탓인지 4~5층 갑판은 텅 비어 인적이 없다. 해경 헬기 한 대가 상공을 선회하고 있어 퇴선 명령이 내려졌다면 해상에서 승객들을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내에선 여전히 ‘선실에 머물라’는 방송이 나왔고 승객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9시35분 세월호에 실린 화물과 승객을 육안으로 알아볼 만한 거리까지 접근한 123정은 9시39분에 구명정을 보내 선미 쪽 3층 좌현 갑판에 있던 기관부 선원 7명을 구조한다. 해경 한 명이 선체에 붙은 구명벌(구명뗏목)을 투하하러 이동하는 모습도 보인다. 7분 뒤인 9시46분 123정은 세월호 선수 쪽 5층 좌현 조타실 갑판에 접안해 속옷 차림으로 허겁지겁 탈출하는 이준석(69·구속) 선장을 태운다. 해경은 구조된 이 선장이 승무원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며 시치미를 떼는 바람에 선박과 승객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듣지 못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123정의 이형래 경사가 밧줄을 잡고 조타실에 겨우 진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상이 끊겨 있어 이 경사가 진입 직후 어떤 일을 했는지, 50~60도의 경사 탓에 바로 빠져나와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타실에서 선내 방송을 통해 승객들을 대피시킬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만은 분명하다.

이어 오전 10시6분 123정 해경들이 선수 쪽 3층 객실의 유리창을 망치와 도끼로 깨고 밧줄을 내려 승객 7명을 끌어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승객 476명 중 상당수가 선체 밖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객실에 갇혀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시간에 배는 이미 거의 90도 각도로 기울어 있었다. 이 일련의 초기 구조작업을 벌이는 동안 세월호 근처의 배는 123정뿐이었다. 상공에는 해경 헬기 B511호 등 2대만 떠 있었다. 해경과 진도 관제센터의 연락을 받은 인근 어선들이 현장에 속속 모여든 시간은 신고 접수 한 시간 뒤인 오전 10시께였다.

■ 선체 내 승객들은 외면? 해경의 지침에는 조난 사고 때는 배 안에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구조 활동을 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해경은 갑판에 있거나 해상에 떠 있는 승객들을 구조하는 수준에 그쳤다. 하다못해 승객들을 상대로 한 퇴선 방송도 원활히 되지 않았다. 123정은 도착 직후인 오전 9시30분에서 35분까지 퇴선 방송을 했지만 세월호와 거리가 떨어진데다 헬기 소리 등이 섞여 선체 내 승객들에게까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좌현 선미 쪽에서 방송을 듣고 배 밖으로 나온 건 기관부 선원들이었다.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는 식으로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 탈출하라고 알렸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123정 대원들은 배가 너무 기울어 선체 진입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반 경비정 대원들이 아닌 특공대가 더 일찍 투입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해경은 당시 출동한 헬기와 함정에 선체 수색을 할 수 있는 인력도 장비도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서해청의 해경특공대 7명은 9시30분부터 목포항에서 대기했지만 10시11분에야 이동을 시작했다. 특공대의 선체 진입은 오전 11시24분에 시도됐지만 강한 조류 때문에 16분 만에 중단됐다. 이후 오후 1시 다시 진입이 시도됐지만 시야가 흐려 30분 만에 철수해야 했다.

목포해경 상황실의 대응도 굼떴다. 목포해경 상황실은 구조 신고가 접수된 오전 8시58분부터 2~3분 간격으로 항공대와 인근 해경, 특공대, 헬기 등에 구조 지시를 내렸다. 여객선의 좌현이 완전히 침수된 9시54분 전까지 상황실이 직접 이동을 지시한 함정 등은 25척이 넘는다. 사고 상황과 탑승자 규모를 고려하면 해경과 민간의 선박들을 신고 접수 즉시 한꺼번에 투입하도록 조처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각성을 더 깨달은 듯 하나둘씩 출동을 지시했다. 결국 세월호 침몰 전 제시간에 사고 해역에 도착해 승객을 구한 건 123정뿐이었다. 헬기로는 6명의 인명을 구했을 뿐이었다.

박기용 이경미 박수지 기자, 목포 진도/안관옥 서영지 기자 xeno@hani.co.kr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 첫 촬영 영상


[세월호 참사]朴 대통령 퇴진 청원 전개…벌써 6만여명 서명
등록 일시 [2014-04-29 08:46:30]
【서울=뉴시스】변해정 기자 =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난맥상을 꼬집으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하자는 누리꾼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청원합니다(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2241&objCate1=1&pageIndex=1)'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날 오전 8시22분 현재 5만7650명의 누리꾼이 지지 서명을 남긴 상태다. 청원이 시작된 지 8일만이다.

본문 글에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은 국가의 총체적 부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 존재의 지상명령이다. 그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 바란다"고 적혀있다.

청원 마감일은 다음달 30일까지로, 100만명 서명이 목표다.

지난 27일부터는 '무능하고 사악한 정부의 총체 박근혜의 퇴진을 청원합니다(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petition/read?bbsId=P001&articleId=152752&objCate1=1&pageIndex)'라는 제목의 청원 글도 등장했다.

이틀만에 1659명이 지지 댓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는 "우리는 4월의 잔인한 바다에 우리의 아이들을 잃어버렸다. 아무도 그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무능한 정부는 총제적 재난구조 시스템의 부재는 드러내놓지 않고 사실을 말하는 여론 집단을 탄압하는데만 능통하다. 언제까지 말도 안되는 대한민국을 지켜봐야 하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총리의 사퇴가 아니다. 총체적 무능과 썩은 권력의 실체인 대통령의 퇴진이다"라고 쓰여있다.

이 청원은 다음달 31일에 마감될 예정이다.

hjpyun@newsis.com

세월호 침몰 당일…'사격훈련 항행경보' 발령

  • 정부 "선체 자세 바꾸자"…사실상 '인양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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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지점과 해경 사격훈련 항행경보 구역. (국립해양조사원)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 해경의 해상사격훈련을 알리는 항행경보가 인근 해역에 발령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사고 당일의 일부 교신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사고원인을 둘러싼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 해경, 침몰사고 당일 인천~제주간 항로 옆에서 사격훈련 예정

28일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동안 남해안 화도서방연안에 해경의 해상사격훈련을 알리는 항행경보(제14-142호)가 발령됐다.

해양조사원의 '항행경보'에는 "화도서방연안에서 해상사격훈련이 실시될 예정이오니 항해선박 및 조업어선에게 훈련구역 접근 시 주의하도록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시돼 있다.

화도(花島)는 세월호 침몰지점인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해역에서 제주방향으로 약 60km 지점에 위치한 무인도로 낚시인들 사이에서는 '관탈도'라고도 불린다.

만약 세월호가 병풍도 인근해역을 지나 평균 20노트로 운항했다면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특히 이 해상사격훈련 지점은 인천~제주간 항로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해상사격훈련에 대한 항행경보는 당연히 진도VTS가 세월호 등 관제구역 내에 있는 모든 선박이나 어선들에게 사전에 알려줘야할 중요 정보다.

하지만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지난 20일 공개한 16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의 진도VTS 녹취록을 살펴보면 해경의 해상사격훈련에 대한 항행경보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립해양조사원 항행경보.
◈ 진도VTS 교신내용 삭제 · 편집 의혹 제기

일각에서는 진도VTS가 교신 내용 일부를 삭제하거나 아예 편집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진도VTS가 사고 당시 사용한 관제채널은 FM 주파수와 동일한 VHF12번으로 비교적 깨끗하게 들리지만 실제 공개된 음성파일은 거의 '잡음수준'이어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는 사고 전날 당초 오후 6시 30분에 출항할 예정이었지만 짙은 안개로 2시간 30분 늦은 오후 9시에 출발했다.

여기에다 다음날 오전 9시부터는 제주 인근 해상에서 사격훈련까지 예정돼 있어 무리하게 속도를 낸 것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뿐만아니라 세월호가 인천을 떠난 뒤부터 계속 교신해온 제주VTS 또한 사고 당일 오전 8시 55분 이전의 교신내용을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진도VTS와 제주VTS 관계자들은 "현재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한편 검경합동수사본부는 26일 진도VTS에 이어 제주VTS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세월호 침몰 당시 교신내역, 항적, CCTV 녹화내용 등 관련자료를 확보하고 정밀 분석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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