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서울시 구조대 투입도 막았다

사고당일 도착불구 4일이나 대기
"탁도 심한 한강서 구조 경험 많아 조기 투입했으면 성과 있었을 것"
서울경제 | 김홍길기자 | 입력 2014.05.01 17:25 | 수정 2014.05.01 21:13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침몰사고 초기에 해군 해난구조대(SSU)에 이어 서울시에서 파견한 한강수난구조대의 투입도 막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현장에 급파됐던 서울시 구조대는 해군 SSU와 해군특수전전단(UDT) 등 군 출신 전문잠수요원으로 사고해역보다 탁도가 2배 이상 되는 한강에서도 구조작업 경험이 많아 세월호 실종자 구조에 적합한 조직이었지만 해경의 저지로 투입되지 못해 정부의 초기 구조가 지지부진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1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인 지난달 16일 오후2시 소방재난본부 특수구조단의 한강수난구조대를 사고해역으로 급파했다. 전문잠수요원 9명과 잠수장비, 헬기 2대가 포함됐다. 구조대는 오후2시쯤 서울을 출발해 2시간 뒤 현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구조대는 현장 구조작업에 즉각 투입되지 못했다. 구조대 관계자는 "당시 현장 구조를 통제하던 해경이 서울시 구조대에 투입지시를 내리지 않아 현장에서 대기만 했다"며 "현장 지휘는 해경이 맡고 있었고 서울시는 지원하는 차원이다 보니 해경의 통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구조현장 안팎에서는 탁도가 높은 수중작업에 숙달된 서울시 구조대의 현장 투입이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면 초기 구조가 좀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한강수난구조대 잠수요원들은 한강 내 구조를 전문적으로 하지만 전부 SSU나 UDT 등 군 출신으로 조류가 심한 해난 구조작업도 무난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탁도가 심한 한강에서도 구조작업을 원활히 한 경험이 있어 10㎝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사고해역에서 구조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었지 않았겠냐는 분석이다. 구조대 관계자는 "한강의 탁도는 사고해역보다 훨씬 열악하기 때문에 당장 투입해도 구조작업에 별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며 "구조요원들도 SSU·UDT 등 군 출신으로 전문기술을 습득하고 있어 조류가 센 해난구조에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구조대는 사고가 발생한 지 4일이 지난 20일에야 처음으로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대 관계자는 "20일쯤 처음 세월호 구조작업에 투입됐다"며 "현재도 9명의 요원이 현장에서 열심히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구조대뿐만 아니라 해군 SSU 투입도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최근 구조 초기 해경의 통제로 SSU 투입이 늦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해경이 초기 구조과정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결정을 제때 내리지 못하며 구조작업이 지체되고 실종사 수색도 늦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김홍길기자 what@sed.co.kr

<세월호참사> "내 새끼 살려내라" 단원고 유족들 절규

<세월호참사> 오열하는 유족들
<세월호참사> 오열하는 유족들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1일 오후 희생자 유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문, 정부를 비판하는 문구의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던 중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오열하고 있다. 2014.5.1 jieunlee@yna.co.kr

피켓 들고 팽목항 행진하며 통곡…실종자 가족 서로 위로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내 새끼 살려내라! 내 자식들 살려내라!"

1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은 부모들의 절규로 가득 찼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다 세월호 사고로 숨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160여명은 이날 팽목항을 찾아 보이지도 않는 사고 해역쪽을 향해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목이 쉬도록 정부당국을 규탄했다.

아이들의 시신을 찾기 전까지 하염없이 바라보던 바다를 향해 "우리 딸 엄마한테 돌아와"라고 외치던 어머니는 끝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세월호참사> '서로의 아픔을 보듬다'
<세월호참사> '서로의 아픔을 보듬다'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1일 오후 희생자 유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문, 실종자 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4.5.1 jieunlee@yna.co.kr

'우리 딸 아빠 품으로 와'라고 쓴 하얀 티셔츠를 입고 온 한 아버지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못난 이 아빠를 용서하지 말아라'라고 쓴 피켓을 들고온 아버지도 하염없이 팽목항을 걸으며 금쪽같은 아이들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한참을 행진하다 멈춰선 이들은 "딱 열번만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 이름을 외쳐보자"며 아이들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지만 몇번 부르지도 못하고 꺼이꺼이 통곡했다.

이들은 이날 '얼른 나와 엄마가 기다리잖아', '너희들이 내 딸, 아들이어서 행복했다', '아들 딸들아 하늘나라에서 너희가 이루고자한 꿈 꼭 이루거라', '미안하다, 용서해라, 사랑한다' 등 아이들에게 하고싶은 말을 적은 피켓을 들거나 티셔츠를 입고 팽목항 길을 행진했다.

 

<세월호참사> '살려내라'
<세월호참사> '살려내라'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1일 오후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문, 정부측을 향한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내 자식을 살려내라'라며 구호를 외치고있다. 2014.5.1 jieunlee@yna.co.kr

'정부는 자식 낳으라 하지 말고 내 새끼부터 살려내라', '아이들 목숨을 담보로 힘겨루기하는 기본이 무너진 나라', '어린 생명을 앗아간 정부는 살인자', '늑장대응 책임져라' 등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정부당국을 비판하는 문구도 많이 보였다.

'마지막 한명까지 반드시 찾아내라', '변명없이 무조건 찾아내라', '첫번째도 구조, 두번째도 구조' 등 수색작업을 다그치는 구호도 외쳤다.

행진을 마친 뒤에는 팽목항 곳곳에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위로했다.

 

<세월호참사> 다시 찾은 팽목항
<세월호참사> 다시 찾은 팽목항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1일 오후 세월호 사고 유가족들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문, 정부측을 향한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실종자 가족을 만나러 가고 있다. 2014.5.1 jieunlee@yna.co.kr

밥은 잘 챙겨먹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아픈덴 없는지 등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같은 반 아이들 중 누가 구조되고 누가 실종 상태인지 명단을 확인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잘 버텨야 애들이 얼른 돌아와요"라는 한 유가족의 위로에 실종자 가족들은 눈물을 닦고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의 자리로 돌아갔다.

atoz@yna.co.kr

국화를 든 시민 60만.. 세월호 추모 열기 확산

휴일 나들이 대신 조문… 연령 불문 ‘숙연한 행렬’경향신문 | 김여란·최인진 기자 | 입력 2014.05.01 22:24 | 수정 2014.05.02 00:56

서울광장에서도,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서도 아침부터 줄을 섰다. 1일 전국의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아침부터 추모객들로 붐볐다. 휴일인 노동절을 맞아 나들이 대신 분향소를 찾은 가족과 연인, 친구, 동호회 회원들의 줄이 이어졌다. 시험을 끝내고 온 학생들도 많았다. 이날까지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 수는 2일 오전 발표되나 안산 24만명, 서울광장 9만명을 넘었고 전국 지자체에 마련된 78개의 분향소를 합치면 60만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중간고사가 막 끝난 햇볕 좋은 날에, 서울광장 잔디밭에 앉은 두 소녀는 말없이 바닥만 봤다. 단짝인 박현정양(15)과 박채영양(15)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30분을 기다려 조문을 마치고도 아이들은 분향소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수영 수업을 해봐서 물 먹을 때 느낌을 알아요. 그 고통을 알 것 같아서 와봤어요. 제 또래들이잖아요. TV에서는 많이 봤는데 시험기간에는 뭘 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어요."





1일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조문하기 위해 제단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안산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이날에만 오후 5시 기준 시민 9000여명이 찾았다. 지난달 26일부터는 총 9만여명이 다녀갔다. 고인들에게 인사하기 위해서 1시간을 기다리는 시민들로 광장은 가득했지만, 보통 광장에 어울리는 웃음과 말소리는 없었다. 어린아이들 몇몇만이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웃었다. 분향소 제단에 꽃을 바치고 묵념을 하고 나온 시민들은 대부분 눈시울이 붉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시민들은 광장 한편의 '추모의 벽' '노란 리본의 정원'에 못다 한 말을 적었다.

어머니와 함께 온 김동현군(9)은 "형아들 누나들 더 많이 살 수 있는데 못 살아서. 형아 누나들 대신 내가 잘할게"라고 썼다.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산다는 게 이렇게 부끄러운 일임을 처음 깨달았구나."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남은 제 인생을 바치고 봉사하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해." 시민들이 엿새 동안 매놓은 노란 리본 4만여개는 빽빽한 벽이 되고, 광장 안 나무 밑동을 둘러싸고 나부꼈다.

한 초등학생은 추모의 벽 게시판에 천사 그림을 그려넣었다. "보통 천국에는 다 천사들이 있잖아요. 언니 오빠들 있는 하늘나라에서 어디가 좋은 델까 생각하니까, 천국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나온 이철씨(39)는 "할 수 있는 게 이뿐이라 나왔다. 정부는 희생당한 아이들에 대한 조치보다 선원, 국무총리 등 총대 메고 잘못을 무마하는 데 집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7년 전 젊은 아들을 잃었던 김일만씨(68)는 합동분향소에 왔지만, 조문도 노란 리본에 한마디 적는 일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는 "그냥 한번 보러 오고 싶었다. 그 부모 심정들을 내가 아니까…. 그 마음이 내 마음이라, 뭐라고 써붙이고 싶으면서도 붙이면 뭐하나 싶다"고 말했다.





안산에선, 국화로1일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의 조문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산시에 마련된 정부 합동분향소에도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지난달 23일 합동분향소를 개설한 이래 이날까지 25만1000명이 다녀갔다. 추모 문자메시지도 9만2400여건이 도착했다. 분향소 옆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검은 리본과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빼곡히 들어찼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노란 리본을 단 시민들은 TV로만 보던 아이들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충북도청 분향소에서는 한 조문객이 지난달 30일 제단에 애절한 심경이 담긴 편지와 저금통을 놓고 가기도 했다. 곰 모양의 저금통에는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은 노란 리본이 매어져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친구들이 떠나면 안되는 길인데 그 길을 떠나고 있네요. 어른이어서 미안하고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 김여란·최인진 기자 peel@kyunghyang.com >

[썰전] 이철희 "세월호 현장에 사복경찰 투입 말도 안 돼"

JTBC | 입력 2014.05.02 01:24

1일 방송된 JTBC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에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 아직 못다한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강용석 변호사는 "사복경찰은 정보과 형사를 말하는데 세월호 사고 현장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며 "(가족들) 옆에서 조용히 녹음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월호 사고 현장에 주둔하던 사복경찰은 한 방송사 제작진에 의해 발각돼 여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굉장히 화가 나는 부분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철희 소장은 "팽목항에 있는 사람들 중에 불순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테러하거나 소요를 일으키겠다는 것도 아닌데 정보과 형사를 투입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소장은 "탑승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가겠다'고 한 이후 사복경찰에 투입됐을 거라 짐작한다"며 "치안이라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보호하는 건데 오히려 국민을 감시하는 행위를 했다"며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복경찰 투입이 '정부 불신'을 가중시킨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소장은 "이런 일 때문에 정부가 사고 수습에 전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JTBC 방송뉴스팀)

[세월호 참사]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없어.." 광장으로 거리로

시민들 "여러 문제 그냥 넘겨온 것이 미안하고 답답"…
청년들 피해 키운 '가만히 있으라' 종이 들고 침묵 행진…
전국 153곳 추모 촛불집회
한국일보 | 광주 | 입력 2014.05.02 03:37

1일 오후 7시 서울 청계광장. 어둠이 내리면서 30여개의 촛불이 켜졌다. 광장 한 켠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는 세월호 침몰 참사 관련 동영상이 비쳐졌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고, 지나던 행인들도 하나 둘 광장으로 모여 들였다. 촛불은 10여분 만에 200여개로 늘었다.

배가 침몰하는 동안에도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을 믿고 따르다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들, 그들을 내버려 둔 채 구조하러 온 해경 보트를 타고 배를 빠져 나온 선원들, 그리고 원칙도 체계도 없이 우왕좌왕하다 생명을 살릴 귀한 시간을 날려 버린 당국…. 이 어이없는 참사를 목도하고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던 시민들이 "이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며 하나 둘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청년 100여명이 4월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침묵 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선내에 방송된"가만히 있으라"는 문구를 적은 피켓과 노란 리본을 맨국화를 든 모습으로 사고 책임자들을 질타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 세월호 침몰 참사로 희생된 자녀들의 장례를 치른 부모들이 1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아직 자녀를 찾지 못한 학부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진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이날 초등 3학년 딸과 함께 청계광장에 나온 주부 황모(42)씨는 "미안하고 안타까워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나왔다"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가 반드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단원고 희생자들과 같은 고교 2학년 아들을 둔 간호사 석주연(41)씨는 "그동안 우리사회에 여러 문제가 드러나도 그냥 넘겨온 것이 미안하고 답답하다. 정치권과 정부를 심판하는 데 이렇게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명동 등지에서는 검은 옷을 입고 흰 마스크를 쓴 청년들이 거리를 행진했다. 명동성당에서 시청앞 서울광장 쪽으로 걷던 이들 손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 한 장과 노란 리본을 단 국화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이들의 말 없는 행진에 행인들도 하나 둘 동참했고, 길목의 상점들도 음악 볼륨을 낮춰 뜻을 같이 했다.

침묵 행진을 제안한 용혜인(24ㆍ경희대 정치외교4)씨는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을 들게 된 것에 대해 "이번 사고에서 피해를 키웠던 그 말, 강요된 교육을 상징하는 그 말 한마디가 대한민국 전체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행진은 광장을 거쳐 보신각까지 이어졌다.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분향을 마치고 행진에 동참한 홍정민(22)씨는 "사고 후 말도 안 되는 수습 과정을 보며 분노해 페이스북에 글을 쓴 뒤 거기서 끝내지 말고 실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가만히 있으라'라는 피켓을 들고 역설적으로 움직인 것처럼,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고 말했다.

1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과 망원역 사이 가로수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플래카드가 20여개 걸렸다. '형과 누나들 가족 품으로 돌아오세요' '원칙도 상식도 집어삼키는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글귀 아래에는 실명이 적혀 있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경기 안산시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진 추모 촛불 집회도 더욱 확산되고 있다. 현재 서울 28곳을 비롯해 전국 153곳에서 촛불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서울시민 촛불네트워크는 3일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기로 했다.

광주에서는 추모 횃불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 소속 조합원 500여명이 광주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자결의대회를 마친 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 행진을 하던 중 대인광장 교차로에서 횃불 30여개를 밝혔다. 이들은 '우리 아이들을 살려내라', '모이자! 5월 8일 금남로. 심판하자 박근혜'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손피켓을 들고 행진했지만 정권 퇴진 같은 구호는 나오지 않았다. 주최측은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이런 썩어 빠진 사회를 반드시 바꾸겠다는 결의를 모아 횃불을 들었다"고 밝혔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거리로 나온 세월호 추모,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교사, 학생, 주부, 시민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추모 침묵 행진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며 희망을 염원했던 마음들이 분노가 돼 거리로 나왔다. 희망을 비탄으로 만든 미흡한 정부의 초동대응,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오는 사회 구조적 모순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마음을 모았다. 속울음을 삼키던 추모의 시간들이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이를 업은 주부들은 강남역으로, 대학생과 시민들은 홍대와 명동, 시청으로, 교사들은 광화문으로 모였다. 주부들은 ‘침묵이 이렇게 죄스러울 줄 몰랐습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시민, 교사들도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됩니다’라는 피켓을 나눠가졌다. 학생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가만히 있으라’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주부, 학생 시민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추모 침묵 행진
“정부와 언론은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만 한다. 그래서 거리로 나왔다”

30일 오후 2시,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는 40여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SNS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가만히 있기 꺼림직 한 사람들, 4월 30일에 모여요’라는 제안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 제안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도 실렸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소수의 시민들은 홍대입구역에서부터 천천히 행진을 시작했다. 어떤 구호도, 어떤 퍼포먼스도 없는 침묵행진이었다. 참가자들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노란리본을 묶은 국화꽃 한 송이가, 또 다른 손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이 들려 있었다.


최초 대학생 침묵행진을 제안한 용혜인 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20여년을 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다. 용 씨는 “세월호 참사로 200명이 넘게 사망하고 아직도 100여 명이 바다 속에 잠겨 있는데 이 나라 어디에도 책임지겠다며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며 “정부와 언론은 세월호 선장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만 한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만히 있으란 말에 의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홍대역 앞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한 시간 남짓 홍대 거리 곳곳에 머물렀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췄고, 속속 행진 대열에 참여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노모 씨와 윤모 씨도 홍대에 놀러왔다 우연히 침묵 행진에 합류했다. 윤 씨는 “학교에서도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가 슬퍼한다. 조회 전 추모시간을 가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SNS를 보고 행진에 참여한 20대 청년은 “부산외대 새터 건물 붕괴로 학생들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는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승객이다. 세월호 사태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침묵 행진은 홍대에서 명동으로 이어졌다. 명동 밀리오레 쇼핑몰 앞에서 SNS를 보고 모여든 학생과 시민들이 행진 대열에 합류했다. 행진 참가자는 70여 명으로 늘어났다.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을 지켜보던 한 여고생은 “사고 당일 오전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수거해 갔기 때문에 야간자율학습를 시작하기 전에야 소식을 들었다”며 “오전에 사고소식을 듣고 큰 사고가 아닌 줄만 알았는데, 뒤늦게 뉴스를 확인하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울먹였다.


참가자들은 명동 밀리오레에서부터 명동예술극장을 거쳐 명동성당까지 침묵 행진을 이어나갔다. 자신을 승은 어머니라고 밝힌 한 주부는 세 살 배기 아이를 안고 명동 행진에 참가했다. 그는 “세월호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를 보며 정말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다는 생각까지 한다”며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둘째 아이를 가질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행진 대열은 명동에서 서울시청, 광화문을 지나 보신각에 도착했고, 그 사이 1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속속 대열에 모여들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인 류해민 씨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만 죽었다”며 “그동안 마음으로만 슬퍼하고 애도했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강조했다. 마포구에서 온 문배식 씨는 “국가가 책임지지 않을 때 국민은 분노할 권리가 있다. 기성세대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추모’의 마음에서 ‘분노’의 마음으로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교사들도 거리로 나왔다. 전교조는 이날 오후 7시, 광화문 파이낸셜 빌딩 앞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부조리한 사회와 정부에 분노하기 위한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150여 명의 교사들을 비롯해, 학생과 시민 등 400여 명이 모여들었다.


강명초등학교에서 온 한 교사는 “만약 세월호에 대해 물어오는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 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며 “침몰되기 전 영상으로 보면 학생들은 끝까지 청소년의 발랄함을 잃지 않고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선생님을 걱정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교사는 “일각에서는 순응적인 아이들을 키운 교육의 문제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순응이나 권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정상적인 구조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추모 발언에 나선 영남중학교 조남규 교사는 “학교에서는 그렇게 말을 안 듣던 아이들이 왜 이때만은 왜 이렇게 말을 잘 들었는지 너무 안타깝다. 아마도 밖으로 나가면 배가 더 기울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이어서 조 교사는 “우리 학생들이 이제 곧 뛰쳐나올 거다. 그 때 뒤쳐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대통령 하나, 교육감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학생과 교사들이 세상을 바꾸는 불씨가 되겠다. 같이 노력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들과 학생, 그리고 시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가만히 있으라’,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수 백 개의 손피켓이 흔들렸다. 참가자들은 이제 추모의 마음을 모아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오는 3일과 5일, 서울과 안산 등 전국 곳곳에서 촛불 집회 및 추모 행진이 진행된다. 1일에는 전국 5만 여 명의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대규모 집회 및 추모행진을 이어간다. 전교조도 오는 17일, 전국교사대회를 통해 거리로 나선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추모’가 ‘분노’로 점화된 촛불들이 켜지고 있다.


[단독] 세월호 선장, 오전 8시 전후해 본사 직원들과 의문의 통화

뉴스K  |  kukmin2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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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5.01  02:35:49
수정 2014.05.01  06: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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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합동수사본부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들이 회사인 청해진해운 측과 7차례 통화했다고 어제(29일) 밝혔습니다. 수사본부가 밝힌 통화들은 모두 세월호가 침몰 중이던 9시 이후였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선장은 이보다 한참 전인 오전 7시 30분과 8시 20분 경에도 청해진 인천 본사 직원들과 의심스러운 통화를 했다는 사실이 국민TV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평소에 없던 통화였다는 점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윤이나 피디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16일 오전 7시 30분 경 인천의 청해진해운 본사에 있는 선박직 직원에게 전화를 겁니다.

전화가 연결됐지만, 이선장은 10초 정도 상대방이 부르는 소리에 아무 대답도 않은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선박직 직원은 곧바로 다시 전화를 겁니다. 그러나 이 선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 ⓒ 국민TV 화면캡처

그로부터 50여분이 지난 8시 20분 무렵 이 선장은 다시 청해진해운의 화물 담당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운항과는 무관한 인천의 날씨 등에 대해 어색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국민TV가 익명의 제보를 토대로 수사본부와 청해진해운측을 취재해 확인한 내용입니다.

   
▲ ⓒ 국민TV 화면캡처

국민TV가 접촉한 청해진해운 관계자는 이선장이 8시를 전후해 본사 직원들과 통화한 것이 사실이라며 평소에는 그 시간대에 선장이 본사 직원들과 좀처럼 통화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선장과 통화한 화물 담당 직원은 이선장이 뭔가 할 말이 있는데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이선장이 평소와 달리 본사 직원들에게 전화를 건 시점은 세월호 침몰 신고가 접수되기 각각 80여분과 30여분 전입니다. 수사본부는 세월호 선원들이 본사측과 7차례 통화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모두 9시 이후에 이뤄진 통화들입니다.

   
▲ ⓒ 국민TV 화면캡처

그러나 수사본부는 이들 7차례의 통화 외에 선장이 그 전에 의심스러운 통화를 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 선장과 통화했던 선박직 직원은 최근 수사본부에 참고인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물류 담당 직원 역시 참고인 조사가 예정돼 있습니다.

국민TV뉴스 윤이나입니다.
 

"SSU가 언딘보다 수십배 나은데, 이해안가"

  • 범대본 vs 이종인, '다이빙벨 논란'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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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이든 해경이든 인명 빨리 구조하는 게 중요한데, 공을 따지는 문제있어


- 해군 투입하면 해경 위치 서지 않아 민간 투입한 듯
- 해군 SSU가 해경보다 장비나 실력에서 월등
- SSU가 장비나 모든 면에서 언딘보다 수십배 나은데
- 수준, 게임이 안되는데 SSU제치고 언딘 투입? 이해 안가
- SSU 빨리 투입해 현장 지휘 일원화 했어야 하는데 안타까워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4월 30일 (수)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도현 (SSU전우회장, 해경 3년 근무)


◇ 정관용> 이 소식 좀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저희가 해경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 해경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해명 자료를 내겠다, 이런 입장은 밝혔어요. 이 상황 어떻게 봐야 할지 해군해난구조대 SSU 출신이고, 해경에서도 8년간 근무했던 SSU전우회의 김도현 회장을 전화 연결합니다. 김 회장님.

◆ 김도현> 네, 안녕하십니까? 김도현입니다.

◇ 정관용> SSU에서는 그럼 몇 년쯤 군복무를 하셨어요?

◆ 김도현> 저는 4년 6개월. 약 거의 5년 근무하고 나왔고요.

◇ 정관용> 4년 6개월.

◆ 김도현> 해양경찰에는 한 3년 근무하고 나왔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군 SSU에 4년 6개월.

◆ 김도현> 네.

◇ 정관용> 해경에서는 3년?

◆ 김도현> 네.

◇ 정관용> 그러니까 SSU를 제대하신 후에 해경에 가셨던 거군요?

◆ 김도현> 그렇죠.

◇ 정관용> 그러면 지금 해경은 민간업체인 언딘이 먼저 잠수해야 하니까 해군은 잠수를 좀 뒤로 미뤄라, 이렇게 했다는데.

◆ 김도현> 네.

◇ 정관용> 우리 김 회장님 보시기에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김도현> 제가 보기에는 해경은 민간인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군을 투입하면 자기들의 어떤 그런 위치가 서지 않기 때문에 군을 약간 미루고 언딘이라는 그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해난구조의 잠수... 뭡니까, 요원들이나 어떤 구조시스템은 언딘의 시스템이 가장 크게 갖춰져 있고요. 인력이나 장비는 가장 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요청을 한 것 같습니다. 해경에서는.

◇ 정관용> 그러니까 해군이 공을 세우기 전에 언딘을 통해 해경의 공으로 세워야 되겠다, 이 말이에요?

◆ 김도현> 제가 보기에는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사실 해난구조대의 정예요원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해경이나 해군, 우리나라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빨리 인명을 구조하는 게 목적인데. 그 부분을, 좀 그런 걸 따진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고 해양경찰대 특수, 특공대요원들이 있지만 인원수가 사실상 정예요원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고요. 정예요원이라면 그 특수임무를, 인명구조를 실행하기 위해서 거기만 전체로 체력훈련부터 해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습니다, 지금 해양경찰은.

◇ 정관용> 해경은?

◆ 김도현> 네. 임무를 두 가지를 수행하고 있죠. 자기 본연의 임무하고 특공대 임무를 두 가지 겸하다 보니까. 자기 체력의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얼른 이걸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군에 있는 UDT나 SSU가 해경에 있는 특수구조대보다 훨씬 실력이나 장비가 낫다, 이거죠?

◆ 김도현> 지금 현재 장비나 모든 시스템은 해군 SSU요원들이 가장 많이 갖추고 있고요. 해양경찰대의 요원들은 특공대 해봤자 스쿠버 장비 하나밖에 없습니다. 다른 장비를 수입해서 한참 움직이다가 중간에 다 폐기처분했습니다. 다이빙 쪽으로는 지금 해난구조대밖에 없죠,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훈련하는 데는.

◇ 정관용> 그러니까 그게 SSU 아닙니까?

◆ 김도현> 네.

◇ 정관용> SSU가 그러니까 해경보다는 훨씬 장비나 실력이 낫다.

◆ 김도현> 월등하죠. 100배 이상 앞서 있죠.

◇ 정관용> 100배 이상?

◆ 김도현> 네.

◇ 정관용> 그럼 아까 말씀하신 민간업체지만 그래도 장비나 인력을 많이 갖추고 있다고 인정하신 언딘은...

◆ 김도현>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해양해난, 이런 시스템 자체는 언딘이 최고입니다, 현재로서는.

◇ 정관용> 그 언딘하고 SSU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 김도현> 그것은 거의 해난구조대하고 게임이 안 되죠.

◇ 정관용> 그러니까 SSU가 언딘보다도 또 몇 배 앞서 있는 거예요?

◆ 김도현> 그렇죠. 수십 배 앞서 있죠. 장비나 규모나 모든 면에서는 거기하고 게임이 안 되죠.

◇ 정관용> 그럼 일단 어쨌든 최정예는 SSU다, 이거잖아요.

◆ 김도현> 그렇죠. 우리나라에서 지금 훈련장이나 모든 시스템을 갖춘 것은 우리나라에 SSU밖에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그래서 해양경찰에서 SSU요원들을 주 업무로 해서 특공대원들을 모집을 하고 있고요, 현재도. 그런데 그 특공대요원들을 이번에 전혀 못 써먹었지 않습니까? 그 훈련과정이랑 그런 시스템이 해양경찰청은 전혀 안 거쳐 있습니다, 지금. 전문성이 완전히 떨어져 있죠, 지금.

◇ 정관용> 그러니까 군 SSU 해난구조대를 제대하신 분들을 해경에서 뽑아가기는 하는데. 제대로 훈련 안 시키니까 해경...

◆ 김도현> 업무를 병행하니까요.

◇ 정관용> 그러니까 해경 특수구조대 실력은 형편없이 뒤쳐진다?

◆ 김도현> 그렇죠. 맞습니다.

◇ 정관용> 그 실력보다는 언딘이 조금 뛰어나네요?

◆ 김도현> 지금 그렇죠. 장비 면이나 다이빙 분야에는 해경대보다 가라앉을 때 후크 장비나 헬멧 장비 같은 표면공급 장비 같은 것. 챔버 시스템 같은 것은 언딘이 있지. 해양경찰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없습니다, 아예.

◇ 정관용> 그런데 그 언딘도 SSU에 비하면 몇 십분의 1 수준이다.

◆ 김도현> 그렇죠. 현재 수준은. 게임이 안 되죠, 아예.

◇ 정관용> 제일 뛰어난 분들을 제쳐놓고 언딘 먼저 들어가야 한다. 이거 이해가 되십니까?

◆ 김도현> 저도 그것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웃음) 저도 생각해 보니까.

◇ 정관용> 그리고 특히나 맨 첫 날이 이게 4월 16일 사고 난 날 오후에 우리 SSU요원들이 도착을 했어요.

◆ 김도현> 네.

◇ 정관용> 그래서 가이드라인이라고 그러고 전문용어로 하잠색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그거를 최초로 설치한 것도 바로 SSU요원이더라고요.

◆ 김도현> 네. SSU 우리 예비역입니다.

◇ 정관용> 아. 제대하신 분들이 가서 했어요?

◆ 김도현> 네. 제대하신 분인데. 지금 인천에 유성수중개발에 일을 하고 있는...

◇ 정관용> 아. 어쨌든 좋습니다.

◆ 김도현> 그런 정예요원들입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최초 설치도 바로 SSU가 했는데. 그런데 설치가 되면 그걸 잡고 들어가니까 훨씬 더 쉬워지는 거잖아요.

◆ 김도현> 잡고 들어가도 조류 때는 못 들어갑니다.

◇ 정관용> 물론 그렇죠.

◆ 김도현> 네. 조류가 세기 때문에 일반...

◇ 정관용> 그때 시간이 저녁 6시에서 6시 35분 사이에 이 하잠색 한 개를 최초로 설치를 했는데. 그다음에 6시 35분 이후에 왜 잠수를 더 계속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질문한 것에 대해서 지금 군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해경에서 잠수작업을 통제했다, 해경 잠수팀이 우선 입수했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 김도현> 네. 그때는 처음이니까 스쿠버 장비로 의존했거든요, 처음에는요. 가이드라인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스쿠버 장비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에. 왜냐하면 다른 처음에 일반 표면 잠수 공기를, 산소를 빼서 호스로 연결한 공급을 해주기 위한 상황에서 잘못하면 그게 지금 시야가 전혀 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줄이 꼬이게 되면 잠수사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스쿠버로 처음에 탐색을 하러 들어갔죠.

◇ 정관용> 그러니까 스쿠버라는 건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 김도현> 그렇죠. 메고 들어가는 거죠. 종료시간 밖에 작업을 못 하죠.

◇ 정관용> 그런 스쿠버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는 작업에 있어서는 해경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겁니까?

◆ 김도현> 네. 저희 요원들이 해양경찰에 약 80명 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저희 정예요원들이. 장비를 똑바로 안 갖추고 있죠, 지금 해양경찰이.

◇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스쿠버 식으로만 친다면 첫날 저녁 6시 35분 이후에 해경 잠수팀이 먼저 들어갔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 이겁니까?

◆ 김도현> 네. 그럴 수도 있죠.

◇ 정관용> 그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언딘이 들어가야 하니까 들어가지 마라, 이건 납득이 안 된다. 이 말씀이시죠?

◆ 김도현> 해양경찰에서 언딘을 좀 많이 믿고 있었는가 모르겠지만 언딘의 잠수요원들 중에서도 미국에서 교육받고 있는 전문 다이버들도 몇 명 있습니다. 그런 걸 제가 알고 있고요. 거기를 자기는 의존했는데 그것보다는 몇 배 앞서 있는 또 전문훈련 돼 있는 SSU. 대한민국의 요원들이 있는데, 우리 해군에. 똑같이 미군들하고 훈련을 같이 하는 요원들이거든요. 그런 다이버들을 먼저 투입해서 현장 지휘를 빨리 일원화를 시켰어야 되는데. 그게 사실상 안타깝고...

◇ 정관용> 가장 안타까워요.

◆ 김도현> 그다음에 실종자 가족들한테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뒤쳐져 있고 아직까지 실종자를 못 찾고 있는 부분에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한 가지만 더 여쭤볼게요. 첫날 이제 그 하잠색이라는 걸 SSU대원들이 처음 설치를 했잖아요.

◆ 김도현> 네. 가이드라인이요.

◇ 정관용> 그리고 나서 해경들이 그쪽으로 들어갔단 말이에요.

◆ 김도현> 네.

◇ 정관용> 그러면 그때 SSU요원들을 좀 다른 편에 또 투입을 해서 하잠색을 더 설치하도록 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 김도현> 그 하잠색을 다이빙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그게 조류가 좀 약했어야 되는데. 조류가 세다 보니까 들어가서 다이버들이 튀어 올라와버립니다. 조류 때문에. 잠수를 못하고. 그리고 그 안에 지금 배의 선실에 가서 유리창을 뭔가 특수기구로 유리창을 깨야만 출입구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 조류 상황에서 유리창을 깨서 거기다 선을, 가이드라인을 연결한다는 것이 쉬운 상황이 아니거든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도움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도현>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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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잠수탄' 해군, 침몰 당시 뭐했나 봤더니…

  • 정부 "선체 자세 바꾸자"…사실상 '인양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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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오전 해군의 행보를 놓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공개된 진도VTS 교신 내용에서도 9시 51분에야 처음 등장할 만큼, 긴급상황이던 당시 행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정황이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교신내역에 해군은 단 두 번 등장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던 지난 16일 오전 급박한 상황.

해경이 관리하는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교신 속에 해군은 딱 한 번 등장한다.

진도VTS에 오전 9시 51분에 잡힌 딱 한 마디.

"세월호 세월호 여기는 해왕성입니다".

급변침으로 왼쪽으로 기울던 세월호가 오전 8시 55분쯤 제주VTS에 처음으로 구조를 요청한 지 56분만이다.

해왕성은 함정 이름이 아니라 우리 해군 3함대의 호출부호.

동해 1함대 천왕성, 서해 2함대 명왕성과 같이 남해 3함대 소속 함정을 총칭한다.

지난 20일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VTS간 육성 교신 음성파일에는 해경과 세월호, 유조선박, 인근을 지나던 어선 등의 어지러운 교신은 있었지만 해군은 이 때 딱 한번 등장한다.

앞서 같은 날 오전 9시4분 7초쯤 사고해역에서 약 60Km 떨어진 목포항 인근에서 해군 함정 한척이 목포해경과 교신한 내역이 진도VTS에 다시한번 잡힌다.

"출항하는 해군입니다, 감도 있습니다".

목포해경이 "세월호 세월호 목포해경입니다 감도있습니까?"라는 교신을 한 지 바로 1분 뒤다.

사고 당일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해경 통신망에 잡힌 해군의 흔적은 두 번이 전부다.

대양해군의 기치는 물론 자국민 보호를 주요 임무로 하는 우리 해군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교신내역에도 없던 해군 어디서 불쑥 나타났나

CBS노컷뉴스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해군 함정 한 척과 링스헬기가 사고현장에 있었다"는 증언을 , 구조활동에 참가했던 동거차도 어민들로부터 확인했다.

동거차도 어민 장모 씨는 "사고해역에 도착했더니 여객선이 왼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었다"며 "조금 떨어진 곳에 해경과 해군 함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신에도 잡히지 않은 해군 함정은 과연 어디로부터 왔을까.

취재진이 사고 당일 해군 함정의 실시간 움직임을 해군측에 확인한 결과, 진도 VTS에서 잡힌 교신 내역과 일치하는 동선이 나왔다.

세월호가 침몰 사실을 제주VTS에 최초로 알렸던 오전 8시 55분.

그로부터 3분 후인 8시 58분에 단원고 2학년생 최덕화 군도 해경에 침몰 사실을 신고했다.

초기대응에 실패한 진도VTS는 9시7분에야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만, 해군은 해경 상황전파 내용을 인지하고 오전 9시쯤 목포항에 대기중이던 고속정 1개 편대를 출동시켰다.

9시 4분에 잡힌 "출항하는 해군입니다 감도 있습니다"라는 목포해경과의 교신내역은 이때 출항하는 두 대의 고속정(PKM)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대의 고속정이 사고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쯤으로 세월호가 이미 선미를 하늘로 드러내고 있을 때다.

사고발생 직후 해경 상황보고를 접수한 해군작전사령부는 흑산도 위쪽으로 훈련 기동 중인 유도탄고속함(PKG) 함문식함에 사고해역으로 이동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린다.

사고현장과 약 40km 떨어져 있던 함문식함은 최고 속력인 40노트로 사고해역으로 향한다.

해군 관계자는 "해군에서 보유한 함정 가운데 가장 빠른 게 유도탄고속함"이라며 "그나마 함문식함이 제일 가까워 기동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결국 진도VTS에 딱 한번 잡힌 "여기는 해왕성입니다"라는 해군 교신의 주인공은 함문식함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자정보방, 모스코스, 핫라인으로 은밀히 접근

해군은 해경과 상선, 어선이 쓰는 초단파무선통신(VHF) 채널과는 다른 채널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는 해경과 상선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VHF 16번 콜링채널과 권역채널을 개방하지만 해군끼리의 교신 때는 고유 채널을 쓰거나 문자정보망을 이용한다.

문자정보망은 해군작전사령부나 함대사령부가 바다에서 작전 중인 함정에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상황보고다.

작전 지역에서 기동하는 모든 해군 함정들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문자정보망으로 함대 혹은 해작사와 의사소통을 한다.

또 '모스코스'라는 위성시스템도 이용된다.

두 방식 모두 다른 상선이나 어선이 해군 작전내용을 청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보안통신이다.

해군 관계자는 "해경과 함께 작전할 때는 일반 통신망을 사용하지만 긴급 군사 작전 등에는 보안을 이유로 문자정보망이나 위성통신, 핫라인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해경 교신내역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해군이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전파를 하며 사고해역에 접근했다는 얘기다.


◈해경 상황보고로 급파됐지만 할일은 별로

함문식함이 사고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10분.

해경은 고무단정을 이용해 좌측으로 90도 가까이 기울어진 세월호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승객들을 한창 구조하고 있었다.

이준석 선장과 선박직원들이 구조된 것도 이 때다.

하지만 450톤급 함문식함은 별다른 구호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고무단정이 세월호에서 쏟아지는 승객들을 구조 중이었기 때문에 근접 기동이 자칫 화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군 관계자는 "먼저 도착해 있던 해경이 '해군함 스크류 와류에 고무단정이 휩쓸릴 수 있으니 좀 떨어져 있어 달라'고 요청해 구조활동에 바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3함대에 배치된 링스헬기도 상황은 마찬가지.

급박한 상황에서 구조장비가 아닌 대잠작전 장비를 달고 출동한 해군 소속 링스헬기는 현장에 일찍 도착했지만, 막상 세월호에 접근할 수 없었다.

이미 해경 헬기 한 대가 세월호 오른쪽 난간 쪽에 기어오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군 관계자는 "공역통제 때문에 링스헬기가 세월호에 근접하지 못했다"며 "뒤늦게 미군 헬기도 왔지만 상황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공역통제(空域統制)란 항공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일정 공간 내에 동시 비행을 제한하는 조치를 말한다.

결국 해군은 해경으로부터 상황보고를 받고 사고해역에 은밀히 접근했지만, 함문식함과 링스헬기 모두 이렇다할 운용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손석희의 ‘뉴스9’, 세월호 보도로 ‘압도적 신뢰’ 얻어내

[일간스포츠] 입력 2014.05.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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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의 '뉴스9'시청률이 세월호 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상파 뉴스시청률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치다. 지난 29일 방송에서 JTBC '뉴스9'은 5.4%(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방송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특히 이날 MBC '뉴스데스크'또한 5.4%의 시청률을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집계 기준이 달라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격차가 거의 없었다. 이날 동시간대 뉴스 시청률 1위는 KBS 1TV '9시 뉴스'(21.3%), 2위는 SBS '8뉴스'(6.4%)였다.

손석희 앵커는 지난달 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매 국면마다 적절한 주제를 선정하고 재빠르게 관련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등, 타 언론보다 한 발짝 빠른 행보를 보였다.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자극 보도를 지양한 것도 신뢰감을 높였다. 지난 25일부터 스튜디오를 벗어나 진도 팽목항으로 자리를 옮겨 '뉴스9'을 진행했다. 테이블 하나 없이 닷새째 똑같은 의상을 입고 진행하는 모습이 진정성을 더했다. 현장 방송 마지막날인 29일에는 "가족 분들이 아직 많이 계셔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현장 진행은 마무리 하지만 이 곳을 향한 시선을 멈추거나 돌리지 않을 것임을 약속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덕현 평론가는 "'뉴스9'은 세월호 국면에서 현장 관계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거나,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독보적인 취재를 보였다"며 "최근 세월호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하거나 동영상을 보내주는 것은, 그만큼 손석희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원호연 기자 bitterswe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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