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기 선생님은 서장족인데 1962년 중국 청해성 서영시에서 태어났다. 중국의 대약진때 자연재해로 먹고살기 곤란한 때라 부모가 다 사망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특수한 능력을 보이곤 해 스님들로 부터 신동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는 기공에 특히 흥미가 있어 수학하다가 23세 부터는 서장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서장 밀법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라싸부라다궁 앞에서 식당을 경영하면서 기공을 시전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식사를 무료로 대접하는 열의를 보이며 새롭고 근원이 있는 기공을 찾고 배우려고 각고의 노력을 다하였다.
특이한 공능을 가진 명사를 보면 3년간을 차로 모시고 다니자 감동하여 밀법을 전수해준 경우도 있고 3년간을 매일밤 발을 씻어 드리니 감동하여 공법을 전수해준 경우도 있을 만큼 기공을 위한 것이라면 철저하게 최선을 다해 나갔다. 이제 어느 정도 높은 단계에 다다른 옥기선생은 설산의 6,000미터 고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1년 3개월간 얼어죽지 않고 고련한 결과 깨달음을 얻고 2천년간 면면히 이어져온 장밀 기공을 현대인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대장공'으로 집대성, 공법을 창시하게 되어 북경에 들어와 덕을 배풀고 모든 국민의 건강을 위한 차원에서 '대장공' 보급에 들어가게 된다.
대장공의 전국 보급을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우선 중국 기공연구 위원회 주임 장진환 장군의 허가를 얻어야 하고 다음 국가체육 위원회 주석오소조의 허가를 받아야 전국에 보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29세였던 선생이 무엇을 할 수 있겠나 하는 의심이 간 장진환 장군은 공법의 내용은 좋은데 특별한 능력을 한번 보여 달라고 하니 잠시 눈을 감고 입정한 후 '지금 우리나라에서 발사하려는 인공위성의 부품에 결함이 있어 도중에 폭발하겠다'라고 하니 놀라 관계자에게 연락하고 자세하게 검토한 결과 그것이 사실임이 증명 되었고 막대한 국고의 손실을 덜어준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나중에는 국방과학공업위원회의 고문을 맡아 유사한 문제들을 여러차례 시정해 주었다.

다음에 국가체육 위원회 주석 오소조의 허가를 받을 때도 애피소드가 있는데 그도 똑같이 특별한 능력을 보이기를 원했고 오소조가 '그 대장공이 당신 말대로 특수하다는 것을 믿겠는데 내가 소개하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면 허가 하겠다'고 하였다.
즉 오소조 친구 한분이 무릎뼈가 다 부서졌는데 북경시내 수 많은 뼈 정형외과 전문가와 수많은 유명한 기공사들을 불러 들였지만 끝내 모두 못 고쳤다고 했다. 이 사람의 병을 치료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옥기 선생님은 오소조가 파견한 사람들과 같이 그 환자집에 갔는데 너무도 젊은 사람이 병을 고친다고 하니 믿지도 않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같이 간 사람이 이분이 오소조가 보낸 의사라고 하니 좀 대하는 듯하였다 한다.

옥기선생은 아무말없이 그의 침대 옆에 15분가량 서있더니 환자더러 석고를 떼게 했다. 주위에서 안된다고 하니 명령하듯 해서 석고를 떼게 했다. 석고를 떼려고 일어나니 구부릴 수도 없었던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지는 것을 보고 모두들 놀랬다. 석고를 뗀후 옥기선생이 서라하니 역시 못 선다고 우겨서 기어코 서보게 하여서 발을 떼어보니 걸을 수가 있었다. 이튿날에는 지팡이도 짚지 않고 자기발로 걸어서 오소조에게 가서 "당신이 보낸 의사가 내 무릎을 고쳤다"고 알려주니 오소조는 너무나 기적적 이라 놀라면서 말씀 하시기를 (이 공법은 확실히 좋다. 내가 수많은 기공사들과 공법을 접촉해 보았지만 당신처럼 실제 효과가 현저한 것은 얼마 보지 못했다. 이것은 건강한 공법이고, 미신 색채가 없고 현대 과학에 접근한 공법이다)라고 칭찬 하시면서 기쁘게 8글자로 아래와 같이 써주었다. 科學求實 爲民造福 한글로 풀이하면 (과학적이고 실제적이며 국민을 위해 복을 마련한다) 이후 국제기공연합회와 중국기공연구 위원회에서 94년도에 중점적으로 추천할 공법으로 결정하고 94년 1월부터 국제기공보(國際氣功報)(氣功科學體育)라는 잡지에 널리 선전하게 하였다.

이렇게 상급 정부의 허가를 받은 후 옥기 선생님은 곧바로 직접 중국 중앙인민방송국에 들어가 방송국의 간부들과 직원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방송국장의 허가하에 동공, 정공, 동태공, 중급공 등 테이프를 녹음했다. 그해 1년내 북경, 복주, 남경, 무석, 제남, 혜주, 서안, 포두, 후아호트, 진황도, 북대하....등 24개 성시를 다니며 대장공을 보급시켰다.
파륜궁 사건 이전까지 약 1억 이상의 중국인이 수련에 동참할 만큼 방대한 것이었다. 파룬궁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 중국정부의 탄압의 대상이 되었지만 아직 대장공은 면면히 수련을 계속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1. 중국 기공 연구위원회 대장공 연구위원회 이사장
2. 대장 과학기술개발 유한공사의 총회장
3. 중국 체육기공연합회 상무이사장
4. 중국 국방 인체과학연구소조의 부소장
5. 중국 인체과학연구원의 고급연수원
6. 중국 풍수연구위원회 상무이사장
7. 중국 국방 공업 연구위원회 고문
1. 93년 8월에 (청도 생물기장 연구소)설립
2. 93년 12월 12일부터 대장공을 전국에 보급시작함
3. 94년 1월부터 (국제기공보와 기공과 체육)잡지에 널리 대장공을 선전하였다
4. 94년 5월 8일에 중국 기공 연구위원회에서 옥기선생님을 대장공 연구위원회의 상무이사장으로 임명
5. 94년 6월 25일 중국 기공 연구회 이사장 회의에서 (중국 체육연구회 대장공 총회성립함)
6. 94년 6월 18일 6월 28일까지 북대하에서 제1기 대장공 제2단계 중급공 학습반을 열었음
7. 인체 장능 치료기를 만들었음
고급 기공사 마전원 선생님은 50여년동안 도교의 선도(仙道)연구에 주력하여 왔으나 1988년과 199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중국 전국 장밀기공(藏密氣功)대회에 특별초빙을 받았고 부비서장을 역임하였다. 雪山金剛 本學上師의 비법을 친수(親授)받았고 12부 대관정(大灌頂)을 받았으며 중국 기공계에서도 명망이 높은바 중국 대장공(大藏功), 중국 천주공(天柱功), 중국 선밀공(禪密功) 단체로부터 기공사와 고급연구원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마선생님의 기공수련은 아주 높은 경지에 도달하여 여러가지 높은 생체에너지로 전국각지에서 종양, 농아, 실명, 야뇨증, 요독증 및 심장, 간, 위, 콩팥 등 부위의 난치병과 각종 외상을 치료하였는데 실명자가 단시간내에 시력을 되찾고 종양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등 치료수법이 절묘하여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마선생님은 또한 만리 밖에서 또는 바다를 사이 두고 원격치료도 할 수 있어서 대중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중국 30여개 지역에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다. 마선생님은 이전에 많은 기공을 수련하여 일정한 단계에 올랐지만 대장공을 수련한 이후 그의 공력과 공능은 매우 빨리 아주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 때문에 마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시길"여러가지 기공을 20년 수련하는 것이 대장공 1년 수련 하는 것보다 수확이 못하다고" 하셨다. 그분께서 이 몇년간 난치병, 이름모를 괴상한 병, 기타 잡병을 치료한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옥기 선생님은 마선생님을 아주 존경하며 그를 만날 것을 약속했고 또한 여러 차례 만났으며 큰 省市(성시)의 중요한 학습반에서 옥기 선생님은 마선생님에 대해 말씀하셨고 1997년 5월17일 마선생님께 대장공을 전공강의할 자격과 중급공을 가르켜 줄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마선생님은 옥기 선생님의 두터운 신임과 사랑을 받았고 기대도 컸다. 이에 대해 마선생님은 옥기 선생님께 꼭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을 계승하여 대장공으로 선을 배풀고 인류에게 행복을 마련하며 실제 행동으로 대장공을 널리 전파할 결심을 표시했다.

마선생님께서 어떠한 사욕도 없이 자기도 돌보지 않고 남을 위하여 고상한 공덕과 전공 치료에서 나타난 기적적 효과에 대한 증명은 가목사시 합강일보와 가목사시 일보에 많이 실렸다. 또 북방문예 출판사에서 출판한 '내일을 위하여'라는 책에 마선생님의 기공 활동을 '生命之光(생명지광)'이라는 제목으로 9,000여자의 장편 문장이 실렸다. 또 가목사시 건립 100주년때 '마전원과 그의 제이차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5천여자 되는 명사탐방기가 '충력'이라는 책에 실렸다. 그리고 가목사시 명인의 한사람으로 정하였다.
옥하 선생님은 1960年生으로서 몽고족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특별히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어릴 때부터 남이 볼 수 없는 것 들을 볼 수 있고 남이 感知(감지)할 수 없는 일을 알고 있었다. 1989년 어느날 그녀는 갑자기 특수공능이 나타나 공태중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옥기 선생님의 모양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 후부터 그녀는 현지 군중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그녀가 손을 휘둘러 병을 치료하면 종기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심지어 암도 고쳐졌다. 이때부터 그는 4년동안 눈앞에 나타난 분이 자기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다니다 끝내 옥기 선생님을 만나 자기의 스승님으로 모셨다. 옥기 선생님께서 친히 제자로 받아 들였다. 그 후 옥하선생님은 열심히 수련하여 공능과 공력이 아주 빨리 커져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 옥하 선생님은 옥기 선생님의 희망대로 대장공의 법맥(法脈)을 계승하여 대장공의 제일전파인이 되었다.
현재 외국에서 돌아와 중국 청도에서 치료중심센타를
건립 중이다.
2004.8월 중에 완공할 예정이며, 화신 선생님과2004.4.30일
청도에서 만나 앞으로 모든 발전 계획에 대하여 결정을 보았다.
1993년 10월에 처음으로 옥기스승님을 따라 전공강의 하였는데 지금까지 전국의 동서남북의 많은 省(성)과 도시로 대장공을 보급하고 다녔다. 지금까지 그가 직접 치료한 환자가 100만도 넘는다. 병을 치료한 숫자가 너무 많아 통계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또 종기를 잡아내고 암을 치료하며 감비증육(增肉), 흰머리 검게하기, 정선법, 생물전감법, 먼곳에서 예측하기, 먼거리 치료하기, 질병을 전이시키는 등 각종 특수 공능을 가지고 있다.

그가 어느 곳에 가던지 그곳에서는 꼭 (한옥하 효능)이 나타나 매우 많은 기공과학 연구회에서 명예고문으로 초빙하고 과학연구 위원회나 병원에서는 명예원장으로 초빙한다. 한옥하 선생님에게 공법을 배우고 병 치료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 할빈시 소년궁에서 전공치료 할 때의 마지막날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강의 할 수 없어 최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1996년 10월을 전 후하여 상해, 무석, 형수 등지에서 현지 병원과 합작하여 의사들을 청하여 따라 다니면서 난치병을 치료할 때 치료하기 전의 정황과 치료한 후의 정황을 검측하게 하였는데, 그 결과가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이때 통계에 의하면 난치병 환자가 203명이였는데 그 중에서 효과가 있는 사람이 104명으로서 51.2%를 차지했고 현저하게 효과가 있는 사람이 44명이였는데 전체인원수의 21.7%를 차지했고 신기한 효과를 본 사람이 13명이였는데 전체의 6.4%를 차지했고 완전히 나은 사람이 42명이였는데 전체의 20.6%를 차지했다. 이로부터 이것은 진정한 功夫(공부)라는 것을 증명했고 그 효과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 이었다.

옥하는 중국대장공과학 연구위원회 부이사장이자 비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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