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제자리 연구중 '그래핀'… 흑린, 새로운 신소재로

  • 박건형 기자

    • 크게
    • 작게

    입력 : 2015.08.21 03:06

    흑린 표면이 얇아진 형태 '포스포린'
    성능 좋은 차세대 반도체소재로 각광

    그래핀
    실리콘(silicon·규소)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 스마트폰과 함께 한국 전자산업을 이끄는 양대 축인 반도체는 지난 50년간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실리콘을 이용해 더 작고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만들며 고속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실리콘 반도체의 소형화가 한계에 달했다는 위기론이 끊이지 않는다. 실리콘 반도체를 더 작게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개발비가 들고, 작은 실리콘 반도체에서 발생하는 열 등으로 인해 성능 개선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로의 선폭(線幅)이 극도로 가늘어지면서 불량률도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실리콘 반도체를 세로로 쌓아 3차원 형태로 만드는 등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고 있지만, 장비 등 기존 반도체 공정을 전부 바꿔야 해 다른 업체는 공정 전환을 망설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리콘을 대체할 수 있는 신물질 개발이 활발하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2003년 개발된 그래핀(Graphene)이다. 탄소 원자 한 층으로 구성된 그래핀은 전자의 이동 속도가 무한대에 가깝다. 그래핀으로 전자 소자(素子)를 만들면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그만큼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래핀은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특성도 있다.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착용형(웨어러블) 기기에 활용하기가 쉬워 '꿈의 신소재'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유다.

    문제는 그래핀 연구가 10년이 넘도록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전류의 흐름을 끊었다 이었다 하면서 데이터를 주고받거나 저장한다. 전류의 흐름이 잘 조절될수록 좋은 반도체다. 하지만 그래핀은 전기가 흐르는 도체의 성질만 갖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지만 상용화 수준의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지지부진한 그래핀을 제치고 흑린(黑燐·black phosphorus)이 주목받고 있다. 인(P)에 고온·고압을 가하면 흑린이 된다. 흑린은 반도체 소자로 사용되기에 좋은 특성을 갖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은 최근 "흑린을 이용, 전자 이동 속도가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월등히 빠른 고성능 반도체를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흑린 표면에서 몇 층을 떼어내면 그래핀처럼 아주 얇은 형태가 되는데 이를 '포스포린'이라고 한다. 포스포린은 그래핀처럼 전기가 잘 통하면서도 전류의 흐름을 쉽게 끊고 이을 수 있다. 김근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팀은 지난 14일 "포스포린으로 전류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영희 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은 "흑린은 실리콘처럼 아주 흔한 물질이고 기존 실리콘 반도체 공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흑린이나 포스포린을 반도체 양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대(大)면적으로 만드는 문제만 해결한다면 5년 정도 이후에는 흑린 반도체 상용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사보내기
    • facebook
    • twitter
    • google
    • e-mail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원문보기: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20/2015082002385.html#csidx44a3affe731aa938005fecf507dbc39

    + Recent posts